제대로 된 여행이란

작가의 말_0

by 정주구



제대로 된 여행은 무엇일까요?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작가께서 하신 말씀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진정한 여행이란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핸드폰과 gps, 길을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이 발달되어 우리는 더 이상 길을 잃을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제대로 된 여행을 하게 될 기회를 상실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자리의 모든 패널들이 그에 동의했습니다. 물론 조금 다른 시차(ott프로그램을 이용하여)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저 또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길을 잃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여행이 저에게는 제대로 된 여행입니다. 내일이면 잊어먹을 다수의 관광지들을 향하는 것보다는, 동네 마트에서 파는 과일과 음식들을 먹은 뒤 관광지와는 상관없는 골목들을 걸어 다니다가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가 블랙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며 지구 반대편의 색감을 찬찬히 느껴보는 것. 이 정도의 빈틈이 있는 여행 말입니다. 딱 그 골목 정도의 빈틈이겠습니다.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겠군요. 좁은 골목 하나 정도의 욕심이,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여행'의 의미라는 게 여행 내내 아주 맹렬히 저를 괴롭혔습니다. ‘제대로 된 여행은 길을 잃는 것이다’고 말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상영되었습니다. 여행 중간중간 저는 그 영화관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있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 그저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아주 얌전한 소리였습니다만, 저는 괴로웠습니다.

여행 중반에서는 그 영사기를 때려 부쉈습니다. 그랬더니 몹시 고요하더군요.




'무감'으로 스스로를 칭칭 감싸맸습니다. 이윽고 일상으로 무사히 회기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감이라는 게 그리 좋은 고치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며칠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좁은 공간은 완전히 고요했습니다. 만, 어쩐지 저는 여전히 영화관에 홀로 앉아있었습니다. 새까만 무감 속에서 저는 계속 생각해 냈습니다. 여행과 인생과 자질구레한 것들을 마구 복귀시켰습니다. 단지 골목 정도의 여유 말고도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척도가 역시 필요하겠더군요.


<깐깐한 사람들 데리고 여행하는 법>의 배경이 되는 이번 유럽여행의 기간은 사실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대략 10일 가량 되었는데, 그에 비해 집필기간이 꽤 길었습니다. 집필기간뿐 아니라 '집필할 결심'을 하는 기간 또한 꽤 길었습니다. 집필을 하면서도 왠지 본론 주위를 맴돌기만 했죠.


꽤 불안한 기분이더군요. 맞습니다. 불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추억을 먹고사는 사람이라고 제가 그랬었지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여행에서의 추억을 해부하며 들여다볼 때면, 그 속의 불안만 보였습니다. 어지러운 마음이었습니다. 여행을 추억한다는 타이틀을 내걸고서, 막상 그 앞에 서면 뒷걸음친다니. 부끄럽습니다.


뱅뱅 돌다가도 중간중간 몇 가지의 자각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곤 그런 것들을 적어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번 여행을 잘했느냐고 물으신다면,

네. 저는 여행을 잘- 하고 왔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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