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하 Feb 07. 2024

행복을 찾는 시간


그런 날이 있다. 

한도치의 감정이 모두 소진되어 마음속이 텅 비어 버린 날이 있다. 

감정이 바닥에 깔리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이럴 때면 나는 이불속 동굴로 파고든다.  

딱딱한 바닥보다는 폭신 폭신 몸을 감싸오는 

매트리스 침대 속이 더 안전하다. 


침대에 누워 사각거리는 하얀 이불로 몸을 

돌돌 말고 눈을 감는다. 

순면이 전하는 공백의 포근함에

딱히 잠을 자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만으로 

회복은 시작 중이다. 



핸드폰은 꺼둔다. 

이렇게 한두 시간이 지나면 

방전되었던 마음이 10% 정도 채워진다.

일어나서 향초를 키고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붉은 심지를 가만히 바라본다.

방안에 흩날리는 블랙 라즈베리 바닐라 향이 

어느새 코끝을 간질거린다. 

바닐라 향은 딱딱했던 마음을 말랑하게 

안아준다. 마음이 놓인다. 

좋아하는 향이 채워진 공간에서 

비슷하지만 희미한 바닐라 향이 나는 종이의

질감을 손끝으로 만지면서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이런 순간에는 길고 복잡한 구조의 글보다는

짧고 단순한 보통 이야기가 적합하다.

예를 들면 마스다 미리의 심플하면서도 

따뜻하고 귀여운 글들이 필요한 순간이다.

마침 <그런 날도 있다>책이 눈에 보인다.

한 장 한 장 읽을 수 록 책 속의 세상으로 

마음이 옮겨가고 


소중한 휴식,


즐거울 거야,


각을 간직한 채 살고 싶다,


점점 기운이 난 나였다.


이 같은 단어들의 조합이 거칠었던 

마음결을 다정하게 만져주면서

어느새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찾아든다.


한 권을 다 읽을 때면 

잃어버린 식욕이 되돌아오고

집에 있는 빵과 따스한 커피 

한 잔을 곁들인다.

보드라운 크림이 듬뿍 들어간

크림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우유가

들어가 담백한 라떼로 적셔준다.


지친 몸을 침대의 안온함과

허한 마음을 좋아하는 작가의 글 속에

텅 빈 위를 보드라운 크림빵과 라떼로 

드리우고 나면.

'그래, 이런 날도 있지.' 같은 

낙관의 말들을 뱉으며 

마침내 모든 감정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우리에게는 동굴이 필요하다.

지친 영혼을 쉬게 하고

무기력한 몸을 감싸 안고

텅 빈 마음을 따스하게 채워줄

동굴이 필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공간은 안전하다.

그 안에서 나는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