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3박 4일 명절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이 잠드는 저녁 9시쯤 출발해
꼬박 5시간을 달려 새벽 2시 정도 속초 집으로 돌아왔다.
대충 짐정리를 하고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가족모두 잠을 잔다.
아침으로 핫케이크를 구워주는 사이
남편은 차에서 짐을 마저 가져온다.
그가 캐리어를 펼쳐주면 4일간 부산 라이프를
책임져주었던 짐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시간이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종일 돌아가고
거실에 여전히 물건들이 돌아다닌다.
다음날 집청소를 하고 여행 빨래와
이불빨래까지 다 뽀송뽀송 해질 때쯤이면
모든 여행의 정리는 끝나있다.
단 하나 여행에서 돌아온 마음은 여전히
제자리를 못 찾고 방황하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틀째까지는
다시 돌아온 자리에 짐을 정리한다는 타당성이
마련된다.
셋째 날부터는 "이제 출발선 앞으로 나아갈 때도 됐잖아?!"
라며 마음속 부지런한 자아가 운동화 끈을 바짝
묶으라고 채근한다.
그럴 때면 느긋한 자아는 그래, 해야지 하다가도 그런데 말이지...
라면서 운동화 고쳐 신기를 미루고 싶어 한다.
이때부터 이 둘의 경쟁이 계속된다.
확실히 어느 한쪽의 의견을 수립하면 될 것을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이에 끼여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무척 피곤한 하루를 보내게 돼버린다.
그럴때면 억울한 기분마저 든다.
여행에서 막 집으로 돌아왔을 때(여행이 길어질수록 틈은 더 벌어진다),
오랜 연휴가 끝나 일상이 시작되었을 때,
토, 일 요일이 지나고 월요일과 마주했을 때,
주로 출발선 위에서 초초함과 느긋함의 다툼이 일어난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를 빨리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 출발선 앞에
서있을 때면 '탕!' 하는 시작소리에
온몸이 귀 기울이고 경직되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서 나의 부족한 속도를
채우고 싶은 마음에 그랬으리라.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작정하고 긴장할 때
잘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데 있다.
오히려 느긋하게 출발할 때 몸이 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더 이상 빨리 출발할 이유가 사라졌다.
빨리 도착해 결승선에서
쉴 수도 있겠지만,
좀 늦더라도 나만의 속도로
출발선 위의 느긋함을 즐기리라고.
부산여행 다녀온 지 4일째 이불속에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