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꿈속에서 뭐든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고,
갈 수 있는 달콤한 상상과 달리.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물질은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A를 하기 위해 B를 미루게 되고,
C에 있으면서 D에 있지 못하고,
E를 사기 위해서 F를 내려놓게 된다.
이런 선택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답이 이미 나와있는 경우가 많다.
예전 나의 마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때는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책과 친해지고 작가의 질문을 내면에 던지고
마음속 나와 친해지고부터
이런 선택 앞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B, D, F들에 대해
미련을 두기보다 의연하게 A, C, E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내가 내려놓은 것들에 대해 마음이 쓰이는 순간들이 있다.
서울에서 30년 넘게 살아오다
속초에서 산지 6년 차.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는 소식을 접하고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내일이 마감이고,
서울 한 중 심 그것도 평일일 때.
매일 바다를 보는 삶이 만족스럽다가도
이럴 때 내가 서울에서 살았더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바로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낙망하곤 한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아침에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면 점심시간이 넘어서까지 침대에 누워 뒹굴거린다.
하기 싫은 일이면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학창 시절에도 벼락치기로 시험을 마주했었다.
여행도 계획적인 것보다 즉흥적인 것을 더 선호한다.
이런 내게도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아침에도 새벽에도
번쩍 눈이 떠진다. 따스한 이불속 유혹을 뿌리치고
서재 앞으로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서재에서
글 쓰는 행위만큼 어떤 일보다 앞선다.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나만의 시간이 앞에 놓이면
매일 2~3시간씩 글을 쓴다.
이제는 하루 루틴으로 자리 잡아 제법 익숙해졌다.
이러다 문득 눌러두었던 게으름이 견고하던 루틴의
틈 사이로 비집고 나올 때가 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매일 하고 있는가?!
같은 부정의 말들이 쏟아질 때면.
포근하고 따스한 침대에 누워 종일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몰아 보고 싶어 진다.
미니멀라이프 9년 차. 옷장을 비우고 비워 내서
이제는 4계절 모든 옷이 옷걸이 36개에 다 걸린다.
안방 드레스룸과 작은방 붙박이장에 우리 4인식구
모든 옷을 적재하고 있다. 여유 있는 방 안의 공간을
누리고자 추가로 옷장을 더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예전에는 계절마다 쇼핑을 하고 옷을 매번 채워넣었음에도
항상 드레스룸 앞에 설 때면 입을 옷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비우고 나니, 언제든 입을 수 있는 옷이
바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옷의 수는 줄었지만.
옷에 대한 만족도는 그만큼 올라갔다.
이렇다가도 늘 옷이 바뀌고 예쁘게 꾸미며 화려하게 사는
아이 친구 엄마들을 볼 때면
겨울 내내 나를 지켜주고 있는 블랙 롱패딩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집에 와서 나의 드레스룸을 둘러본다.
그곳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옷들만 남겨있다.
매번 손이 가고 잘 입는 옷들만 걸려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소박하지만 단정한 공간이 내 삶에 전하는 가치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고, 초라했던 블랙 롱패딩이
다시 든든한 베이직 아이템이 되어 나와 함께 해준다.
앞으로도 나에게 지나쳐간 B, D, F에 대한
유혹의 재잘거림이 다가올 수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지나가 버린 선택들에 대해
미련을 갖기보다는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A, C, E를 바라보기로 했다.
지금 내가 선택한 것들을 마음껏 좋아하기로 했다.
미술관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오늘의 또 다른 바다 색과 바다향을 맡고,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는 대신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나의 글과 이야기가 하나하나 쌓이는
즐거움을 누리고,
적은 양의 베이직한 아이템만 걸려있는
드레스룸이라도,
매일 손이 가는 다정한 공간임을,
이 공간이 전하는 삶의 중요한 가치를
마음에 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