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어느 날이었다. 막 결혼한 신혼이었고 처음으로 집을 꾸밀 수 있는 기쁨에 취해있었다.
매일 새로운 가구와 소품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인터넷 속을 부지런히 배회하던 중에 사진 한 장과 마주했다. 하얀 이부자리만 있고 방은 텅 비어있었다. 분명 침실에 있어야 할 가구인 침대가 없고, 침대 옆에 세트로 있어야 할 협탁 같은 선반도 없었다. 오로지 방안에 새하얀 침구만 단정히 놓인 공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생활방식인 미니멀라이프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였고 서점 매대에도 미니멀라이프 책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관련 책들을 읽고 난 뒤에야 사진으로 받은 충격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분명 필요한 물건이 없거나 부족하면 불편하리라 생각했는데, 저자들의 삶은 오히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물건에서 해방된 여유가 삶 곳곳에 묻어 나왔다.
책을 덮은 후 노트의 ‘구매 목록 리스트’를 들여다보았다.
식탁, 침대 옆 협탁, 안방에 쓰일 4단 서랍장, TV장, 냄비세트, 그릇세트가 적혀있었다.
갑자기 이 많은 것들이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찾아왔다.
리스트의 물건들은 혼수 목록 중 하나였다. 많은 이들이 결혼하고 신혼집을 꾸릴 때 기본적으로 차려놓는 아이템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와 신랑에게 꼭 필요해서 적어 놓은게 아니었다.
그렇게 리스트의 물건들을 사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바로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정말 괜찮을까?라는 불안이 따라왔다. 일단 당장 사지 말자. 꼭 필요해지면 그때 가서 사면 되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때부터 하루의 루틴은 확 바뀌었다. 가구와 살림살이를 사기 위해 온라인과 매장을 돌아다니는 대신 집에 있는 가구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해 볼까로.
가장 먼저 우리 책상으로 사두었던 이케아 테이블이 식탁으로도 괜찮아 보였다. 야마하 오디오를 두고 낮에는 노트북을 올린다. 이렇게 오디오로 노래를 듣고 노트북을 하면서 나의 책상으로 사용하다가 저녁이면 노트북을 치우고 식사를 차린다. 두 식구이기에 식탁으로 사용하기에도 알맞았다.
TV장도 마찬가지다. 추가로 사는 대신 이케아 수납장 위에 TV를 올려보니 근사한 TV장으로 변신했다.
집을 자세히 둘러보니 신축 빌라여서 곳곳에 빌트인 된 수납공간이 있었다. 이를 잘 활용하자 4단 서랍장은 필요하지 않았고, 침대 옆 협탁은 단지 예뻐 보여서 갖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침대에서 읽은 책이나 핸드폰은 바닥에 두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냄비 세트와 그릇도 남편이 자취할 때 사용하던 것들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이 역시 예쁜 새 물건으로 들이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마음을 비운 덕분에 혼수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고, 모두 ‘집 구입 통장’에 저금했다.
이때까지 리스트의 목록을 채워 넣는 대만 신경을 써왔다. 꽉 채워진 리스트를 확인할때도 혹여 빠진게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으로 리스트의 목록에서 비울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초점이 바뀌자 삶의 방식도 자연스레 변화가 찾아왔다.
‘어떻게 꾸며볼까? 무엇으로 채워볼까?’라는 채움에서 ‘오늘은 무엇을 비울까? 이 물건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일까?’라는 비움으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