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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Aug 12. 2024

명품백 보다 에코백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세련된 향기와 화려한 디스플레이 가운데 나의 명품백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하얀 장갑을 낀 손이 건네온 영롱한 물건이 나의 소유가 되었을 때 기쁨은 벅찼다.

꼭 갖고 싶던 가방을 어깨에 걸치자 그간 힘들게 노동해 온 시간을 보상받는 듯한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집에 보관할 때도 혹여 먼지라도 쌓일까 구입 때 받은 더스트백에 곱게 넣어두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면 두 팔로 포옥 안아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혹여 젖을까 봐 정작 나는 비에 맞더라도 백이 비를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단지 가방이 아니라 하나의 보석과 같았다. 특별하고 반짝거리는 보석말이다.

여느 소비와 마찬가지로 이 보석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반짝거림은 사라져 갔다. 하지만 여전히 명품백을 걸친 어깨는 나의 가치를 올려주고 더 근사한 사람이 되는 듯한 기분을 입게 했다.

이 감흥을 느끼기 위해 반짝거림이 사라질 때면 또 다른 명품백 소비로 이어갔다.


어느 날 브랜드에서 사은품으로 가방 하나를 받았다.

하얀색의 부드럽지만 탄탄한 천위에 하늘색 로고가 새겨진 가방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백이 유행하기 시작했지만 별로 관심이 가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명품백에 한참 빠져있던 흥미가 보잘것없어 보이는 천 가방에 옮겨가기 쉽지 않았을 테다.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을 처음에는 장바구니로 쓸 생각이었다.

칸도 나뉘어 있지 않고 지퍼도 없는 오픈형이었다. 칸이 없었지만 오히려 나뉨이 없어서 이것저것 막 적재하기 좋았다.

비가 오는 날 명품백 대신 에코백으로 외출했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소지품을 넣고 집밖으로 나가는데 유난히 걸음걸이가 가벼웠다. 집으로 돌아와 궁금한 마음에 양손에 에코백과 명품백을 들어 무게를 비교해 보았다. 엄청난 차이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백은 속이 비어도 그 자체만으로 무게가 상당했다. 반면 천으로 만들어진 백은 말 그대로 그냥 천 쪼가리의 무게였다.

게다가 비를 맞은 천가방은 젖어 있었지만 아무 걱정이 없었다. 천이니 그대로 말리면 그만이었으니까. 혹여 물기라도 묻으면 유난법석을 떨던 가죽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한 손에 들린 명품백을 바라보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이 무겁고 불편한 가방을 왜 들고 다닌 걸까?!


문득 찾아온 회의감과 가벼워진 어깨의 해방감에 점점 명품백보다 에코백을 매고 외출하는 날들이 익어갔다.

미니멀라이프에 입문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드레스룸 한편에 쌓여있는 가방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죽가방은 부피도 크고 조직이 고정되어 접히지 않아 자리 차지 또한 크다. 반면 천가방은 보관할때도 몇번 접어서 두면 자리 차지 또한 작다. 거의 매지도 않는 명품백은 그야말로 애물단지였다. 더는 쓰이지 않는 물건들에 귀한 자리만 뺏기고 있었다.

이미 내면에서도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품백들을 가장 먼저 비우기 시작했다. 마음에서 멀찌감치 멀어져 있더라 하더라도 비울 때가 되면 막상 본전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본전 보다 무서운게 고정된 반응양식이다. 어느새 몸과 마음의 세포들은 에코백의 가벼운 편리함에 젖어 있었다. 명품백의 무거운 불편함으로 돌아갈 여지는 추호도 없었다. 속은 쓰렸지만 모두 비워냈다.


최근 뉴스에서 한 명품브랜드 382만 원 가방의 원가가 단돈 8만 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하청에 하청을 주고 노동착취 같은 열약한 근무 환경은 소비자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이미지의 명품가방이 탄생될만한 곳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가 명품백을 드는 것은 그 가방 자체이기보다 가방이 입고 있는 브랜드인 것이다. 명품이라는 브랜드의 가치 때문에 우리는 열광하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는 자신들의 휘소성과 높은 가치를 강조하며 마케팅을 한다. 유명한 셀럽들을 엠버서더로 인명하고 그들을 공식행사에 초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물질 만능 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의 허상일 수 있겠다. 명품백을 들면 나도 셀럽처럼 특별해질 것 같고 부자들처럼 부유해질 것 같은 환상말이다.

374만 원의 돈으로 브랜드를 산다고 해서 우리의 가치는 올라가지 않는다. 가치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본질적인 가치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은 인간으로서의 내면적 가치이다.



이제는 명품백 대신 2개의 에코백이 있다. 노트북 가방으로 아페쎄 데님 에코백을 든다. 17인치의 제법 큰 노트북도 거뜬히 들어간다. 조직 소재도 튼튼해서 안전해야 하는 노트북 가방으로 제격이다. 그전에 노트북은 필히 하드케이스에나 가죽 파우치에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명 이들이 더 안전할 수 는 있겠지만 더 불편한것도 사실이다. 2년넘게 써보니 에코백 만으로도 노트북 가방은 충분했다. 덕분에 불편한 하드케이스나 무거운 가죽 파우치가 더는 필요가 없다. 주로 카페에 글쓰러 갈때나 짐이 많은 날 사용하기에 알맞다.


나머지 하나는 베이지 색의 기본 백이다. 색상이 진하거나 튀는 컬러는 그만큼 쉽게 질릴수 있다. 쉽게 질리면 또 새로운 물건을 탐하게 된다. 이런 무채색은 개성은 부족하지만 언제봐도 변함없는 무던함이 있다.  

작은 토트백 사이즈보다 끈이 긴 숄더백 사이즈가 실용성이 높다. 어깨에 맬수 있어 두 손목도 자유롭고 왠만한 일상 소지품은 거뜬히 들어간다. 그렇다고 막 크지도 않아서 어디든 가볍게 들고 다니기 편하다. 동네 마실갈때나 바다 피크닉갈때나 어딜가도 이 가방만 있으면 든든하다. 4년째 데일리백으로 잘 애용중이다.

중요한 공식 행사가 있을 때 에코백을 들고 가기 그렇다면 그냥 아무 가방도 들고 가지 않으면 된다. 옷만 상황에 맞게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는다면 가방의 유무는 중요치 않다. 혹여 에코백을 들고 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주변을 의식하는 우리 마음의 문제이다.

명품백에서 에코백으로의 이동은 내게 소비의 가치를 재정립하게 해 주었다.

단순히 주류를,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내게 맞는 가치소비를 하게 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화려함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가치와 필요의 당위성을 우위에 두게 되었다.


가벼운 에코백이 좋다. 혹여 잊어버려도 타격감이 적고 관리도 편하고 바닥에 훅훅 두기에도 부담 없는 나의 에코백이 좋다.

에코백과 함께하는 생활은 가볍고 느긋하다. 어디든 가기 쉽고 변화에 유동적이다. 행위의 여유와 자유가 주어진다.

여행할 때 캐리어 안에 작게 접어두면 백인백이 되고 캠핑할 때 안에 옷을 넣어 주면 포근한 베개까지 되어준다. 이만한 아이템도 없다.

앞으로도 쭉 명품 백 보다 에코백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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