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은 그 동네의 첫인상이다

속초 이사 첫날 이야기

by 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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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꾸어야 한다 - <공간의 생산> 철학자 앙리 르페브로



뜨거운 여름을 뒤로하고 선선한 가을의 기대가 시작되는 9월의 어느 날이었다. 경기도에서 강원도 속초로 장거리 이사다. 아침 7시부터 잡혀있는 스케줄에 이른 5시부터 눈이 떠진다. 거실로 나오니 창밖으로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결혼하고 3년간 2번째 이사인데 두 번 모두 이삿날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던데, 그 덕분인지 '3년 동안 무탈하게 지냈구나'라고 결혼기간을 돌이켜본다.

포장이사여도 11개월 아기와 장거리 이사는 만만치 않다. 아기 식사만 꼬박꼬박 챙기고 엄마 아빠는 빵조각으로 대충 끼니를 때운다. 4시간을 이동해 이사업체보다 먼저 도착한다. 점심을 먹는 대신 가구들보다 먼저 바닥을 훔친다. 꼬맹이는 빈집이 낯선지 부스터에 혼자 있지 않는다. 번갈아가며 아이를 돌보고 청소를 한다.


이사를 마치고 두 번째 청소를 끝내고서야 제대로 된 첫 끼니를 먹는다. 이사 첫날에는 항상 짜장면이 함께다. 지금껏 살아온 곳에는 스타벅스는 없어도 중국집은 500m 안에 있다. 짜장면은 그 동네의 첫인상이다. 처음 먹는 짜장면이 맛이 없으면 그곳의 첫인상도 괸시리 멀어진다. 허기진 와중에 후기까지 검색하며 근처 괜찮아 보이는 짜장면집으로 주문을 하는 이유다. 새집에서 짜장면이름과 새로운 주소를 말한다. 속초 주소가 입안에서 물에 부은 기름처럼 불리 데어 둥둥 떠다닌다. 이사 첫날에만 느낄 수 있는 육체적 언어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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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온 짜장면 탕수육 세트는 그릇의 온기가 채 사라지기 전에 흡입된다. 이사를 끝마치고 먹는 짜장면은 왜 이렇게 맛있을까. 장시간의 고단한 육체적 노동으로 바닥난 체력과 텅 빈 위덕분일까~방금 도착한 따끈한 짜장면 한 젓가락 입에 물고 있을 때 이삿날 가장 안심되는 순간이다. 이 또한 이사 첫날에만 느낄 수 있는 육체적 감각 반응이다.


제대로 된 첫끼를 먹고 나서야 거실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새집에 배치된 가구들은 둥지를 떠난 새들처럼 낯선 소리를 내뱉는다. 집과 숨 쉬는 시간이 쌓일수록 가구들도 우리들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어렴풋한 모습을 그리며, 창밖을 내다본다. 비가 막 그친 촉촉한 공기 사이로 멀리 바다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코끝에 여린 바다향을 두 눈에 하늘과 바다의 조우를 담고 있으니 이날의 모든 육체적 피로가 사르르 씻겨진다.


'그래, 저 바다가 멀리서 이사 온 우리를 반겨주는구나' 동해바다의 환영을 마음 풀어 받아들인다. 그렇게 속초에서 우리가족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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