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곁으로 오기까지

by 주하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


3년 전 겨울이었다. 신랑 품에 안겨 소리도 나오지 않는 슬픔으로 흐느끼며 한참을 울었다.


"너무 힘들어....."

"그냥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 난 우리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워"

"그럴까?.... 그래... 그러자....."

그리고 우리 둘만의 새로운 삶으로 전환을 기념할 겸 유럽여행 티켓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보지 못한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등등 슬픔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시작으로 향하는 길 위에 서있어서 인지 마음이 참 가볍고 편안해졌다.


그로부터 일주일전, 처음으로 참석한 신랑 고등학교 친구들과 떠나는 가족여행. 우리까지 총 다섯 식구. 우리를 제외한 네 가족이 어린 아기가 있었고, 두 가족은 둘째까지 임신 중이었다. 엄마들은 저녁을 먹고 자연스레 숙소 거실에 이불을 깔고서 아기들을 돌보며 대화를 나눴다. 나는 신랑과 신랑 친구들 무리에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덮고 잤다. 아니 자는 척을 했다. 아기 엄마들이 내가 신경 쓰였는지 몇 번 부르러 왔지만, 자는 모습을 보고 돌아갔다.


혼자 누워있는 방안에 맴도는 쌀쌀한 기운이 그날 병실의 차가운 냉기를 불러왔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찾아와준 소중한 아기, 우리 곁을 떠날 때 밀려오던 상실감이 뒤집어쓴 이불 사이를 비집고 침입했다.

그 침입자는 여행 다음날까지 내내 나를 따라다녔고, 그렇게 여행은 지나갔다. 집에 와서도 엄마들과의 단톡방에서 계속 오가는 육아 이야기들.... 신랑과 상의하고서, 엄마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 메시지를 남기고 단톡방을 나왔다. 마음은 홀가분해졌으나 고였던 아픔이 터져오면서 눈물로 맺혔다.


그렇게 신랑과 눈물 섞인 대화를 나누고 둘만의 삶을 선언했다. 새로운 삶을 응원해 줄 것 같은 티켓을 예약하고 결제를 하려던 당일, 첫째가 영화처럼 우리 품을 찾아왔다. 한 번의 아픔 뒤 1년 만에 다시 찾아온 생명이기에 기쁨은 컸고, 충만했다.



둘째 생각은 있어요?



2년간 상실감과 허탈감으로 곪고 상처 난 지친 마음 때문이여서인지 이 질문과 마주할 때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No!를 외쳤었다. 여기에 현실 육아까지 시작되면서 더 단단히 굳히기에 들어갔다. 클수록 더 예쁜 짓도 많이 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첫째를 볼 때면 아주 가끔 '둘째'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렇게 경계선을 오갈 때 돌아오는 것은 아이 아빠의 야근으로 늦게까지 아기와 마주해야 하는 지친 엄마만이 남아있었다. 현실의 벽에 둘째가 들어올 여유라고는 틈도 없었고, 첫째가 쓰던 철 지난 옷들 장난감들 모두 드림 하거나 정리했다.



그렇게 10개월이 흐르고 속초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신랑은 수도권에서 10년 넘게 몸을 담그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쉬는 시간을 가지며 속초에서 새 직장을 알아보았다. 몇 달의 휴식기를 가지고 신랑에게도 나에게도 꼬맹이에게도 숨통이 트이며 웃음이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직장일과 가정 사이에서 시간 조율로 스트레스를 받던 아빠에게도 잦은 야근으로 늦게까지 자주 혼자 종일 아기를 돌봄으로 지쳐있는 엄마에게도, 그런 엄마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던 아기에게도 따스한 봄빛같은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금과 같던 이 휴식기로 인해 신랑의 새 직장 1위 조건은 칼퇴근이 되었고, 그렇게 저녁 있는 삶이 곁으로 오게 되었다. 8시 반에 출근해서 6시 10분이면 칼같이 집에 오는 아이 아빠가 있기에 우리의 저녁 시간은 가족들의 대화와 천천히 흘러가는 온기 있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일의 강도도 이전에 비해 가벼워진 연봉만큼 줄어들었기에 육아와 가사일 참여도도 함께 상승이다.


주말이면 근처 바다나 호수나 산으로 가벼운 피크닉을 즐겨 한다. 모래놀이, 솔밭의 솔방울 줍기, 호수에 오리들과 이야기하기, 산에서 나뭇잎 밟고 놀기 등 자연과 커가는 아이를 볼 때마다 둘째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첫째가 동생과 함께 모래성을 쌓고, 물장난을 치고, 나뭇가지로 소꿉놀이를 하고, 호수 공원을 뛰어다니는 모습들이 슬며시 상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생활비도 두 배가 들 텐데?'

'어린 나이도 아닌데 체력은 되겠어?'

'둘째는 2배 힘든 게 아니라 8배 힘이 든다던데 어떻게 할래?'

'출산 과정을 또 겪으려고?'


철옹성같이 두터웠던 현실의 벽들이 하나둘 함께 녹아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속초에서 8개월간의 시간들이 쌓여 우리 가족에게 둘째라는 선물을 전해주었다.




둘째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은?


첫째 때 무조건 새 거, 좋은 거, 비싼 거 샀었다면 둘째인 지금은 중고로 저렴히 구입하거나 주변에서 물려받고 있다. 아기 물건은 금방 자라서 사용시기도 적기에 꼭 새 상품이 아니더라도 깨끗한 중고를 사용하면 경제적이다.



둘째는 발로 키운다는 말이 있다. 진짜 발로 키우겠냐마는 내려놓을건 내려놓고 요령껏 융통성 있게 육아에 임하면 첫째 때 보다 한결 마음이 편할 것 같다. 3남매 중 막둥이로 자란 나도, 첫째 둘째 언니 오빠와 달리 전적으로 방임 육아를 경험했다. 밖에서 하루 종일 뛰어놀다가 엄마가 밥 먹을 때만 불러서 밥을 챙겨 먹고 또 하루 종일 뛰어놀곤 했다. 자유롭게 자란 만큼 성격도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자리 잡힌 것 같아 만족한다.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기. 첫째 때는 연고가 없는 동네에서 지내다 보니 철저히 혼자였다. 유일한 조력자는 신랑이었고, 그마저 잦은 야근으로 늦게 오기 일수였다. 지금 속초에서 사는 아파트에는 부대시설이 잘 되어있다.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 실내 키즈카페에 가면 아이 또래 엄마들과 자주 마주친다. 어린이집 가기 전 아기 엄마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며 서로 육아에 힘을 실어주고 소통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소통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다.



어린이집 돌전에 보내기. 아이가 자랄수록 커갈수록 마음속에 차오르는 사랑의 기쁨은 언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경험이다. 아이 엄마가 되보지 않고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에 신기하고 행복을 안겨준다. 이에 반해 나 자신으로써의 시간과 삶에 대한 갈증도 자라난다. 엄마로써만 내 인생을 보내기에는 가슴 한편에 건조한 사막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기분이다. 첫째 때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자고 신랑이 이야기할 때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기를 맡기기에 불안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행히도 첫째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원장님과 선생님들 모두 정말 좋으신 분들이어서 둘째가 돌전이라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8~9개월 정도에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 이 생각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줄 것 같다.



분유도 괜찮아. 출산하고 1주일간은 수술 때문에 힘들었고, 조리원에서는 수유 때문에 고된 시간이었다. 출산만 힘든지 알았지, 수유라는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시간 되면 유축하고, 수유하고, 젖소가 되면 이런 기분일까... 몸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는데 수유까지 하려니 힘듦이 배가 되어 다가왔다. 둘째 때는 조리원에 있을 때까지만 초유를 먹이고 단유 할 생각이다.




"공기 좋은 강원도 살다가 둘째 생기는 거 아니야?"


속초로 이사 소식을 전하자 친구에게서 돌아온 질문이었다. 그때는 "절대, 그럴 리가~~"로 웃으며 넘겼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공기 좋고 자연과 둘러싸인 강원도 속초에서 보내고 나니 생각도 않던 둘째가 우리 가족의 삶으로 찾아왔다. 첫째와 함께한 인생의 여행을 내다볼 수 없었듯 둘째와의 새로운 항로도 어떤 물결들로 채워질지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늘어나는 웃음과 사랑으로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보다 따스하게 채워지지 않을까?!하는 작은 바람이 자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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