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하 Jul 12. 2021

글쓰기가 쉬워졌다

고등학교 시절은 우울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어디 하나 마음 둘 곳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번민으로 가득한 그을음이었다. 오직  글을 쓸 때만큼은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오롯이 내가 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있을 때 내가 살아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 생생함이 주는 희열이 나를 감쌌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음의 회색 덩어리를 덜어내고자 독서를 즐겨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수록 예전의 취미가 생각났다. 가슴 한편에 첫사랑의 아린 추억처럼, 글쓰기가 그리워졌다. 그 마음을 꾸역꾸역 담아서 글쓰기 책들을 먹어 치웠다.

집 책장을 가득 채울 만큼 읽고 나니 반복되는 내용들이 눈에 들어왔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많이 써봐야 한다. 단문으로 써야 한다. 주제가 명확해야 한다. 주제가 일관되야한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야 한다. 초고는 쓰레기다. 매일 꾸준히 써야 한다.


그 뒤로 글쓰기 책을 읽어도 더 이상 감흥이 오지 않았다. 반복되는 내용과 실천방법들.

그 사이 글을 쓰는 횟수는 늘어갔다. 블로그를 시작으로 브런치, 인스타에도 글을 올렸다. 특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부터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커져갔다. 자라고 자라서 거대한 산처럼 마음 켠에 자리했다.



필사에 관심이 생겨서 책을 한 권 빌려왔다. 글쓰기 코치로 유명한 송숙희 작가의 책이다. 따라 쓰기의 기적. 빌려와서 보니 필사 책이라기보다는 책 쓰기에 관련된 실용서였다. 대한민국 1호 책 쓰기 코치라는 명성답게 책 내용이 실용적이고 알찼다.

"생일날과 추수 감사절을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 실제로는 생일날은 물론이고 휴일에도 예외 없이 10페이지를 쓴다고 고백했습니다. 스티븐 킹의 인터뷰 내용이다.


카프카가 말한 책이 도끼가 되는 순간이었다. 도끼가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내리쳤다. 그 충격으로 몇 초간 멍하게 가만히 있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도, 다른 책들에서도 이미 접했던 그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매일 써야 한다. 백번도 넘게 들어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비껴갔던 말들이 나를 관통했다.


산에 가려져 나무를 보지 못했다. 산이 되려면 나무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산을 갖는 비결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나무를 심는 것이다. 하루하루 나무를 심어야 한다. 하나의 산에 나무는 몇 그루나 될까? 산의 크기에 따라 못해도 몇 천 에서 몇만 개가 되겠지. 꾸준히 나무를 심다 보면 숲이 되고 그 숲이 모여 산이 된다. 나무도 잘 심지 않으면서 매일 남의 산이나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나에게도 저 산이 있었으면... 나는 언제나 저런 높고 깊은 산을 가질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나무를 심는 대신 부러움과 의심으로 가득 채워 갔다.


그들의 말들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꾸준히 매일 같이 글을 써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요. 하루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양을 채워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책상에 앉아 글을 써요. 불멸의 고전을 쓴 작가들, 유명 작가들이 강조했던 말들.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한 그루 글을 심어야 한다. 처음이라 작고 빈약한 나무가 태반이다. 그럼에도 심어야 한다. 심다 보면 나무도 자랄 것이고 점점 멋지고 푸른 나무들로 채워질 것이다. 타인 바라보기를 그만 하자. 타인의 나무는 타인의 산이다. 나에게는 나의 나무가 있고, 내가 이룰 산이 있다. 그저 매일 한 그루 글을 심기만 하면 된다. 나무를 심으면 언젠가 숲을 이루고, 그 숲들이 모이면 산이 될 테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떨어져 나갔다. 지금 쓰는 이 글이 빈약하고 초라 하 다는 걸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잘쓰고 싶은 욕망 위에 한 그루에 대한 믿음이 채워졌다. 글쓰기가 쉬워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