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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Jul 19. 2021

매운 닭갈비먹고 잊어버리는 거야

오전 내내 쓴 글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것저것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마지막 부분을 잘랐다. 자른 부분을 복사해서 저장해두려고 새창을 열고 붙여 넣기를 하고 저장을 눌렀다. 작가의 서랍을 들어가 보니 쓴 글이 없고 마지막 저장한 짧은 문장들만 남아있었다. 눈앞이 하얘졌다.

처음 브런치 문을 두드렸던 때가 생각났다. 4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서 쓴 글이 사라졌다. 사진을 지운다는 게 그만 글을 지운 것이었다. 10분간 멍하게 가만히 있었다. 컴퓨터를 닫지도 글을 다시 쓰지도 못했다. 그때 방에 들어온 남편이 내 말을 듣더니 몇 번 클릭을 했다. 없어졌던 글이 다시 살아났다. 나는 그를 잡고 폭풍 오열을 했다. 아이 둘을 낳고도 흘려본 적 없는 눈물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꺼이꺼이 그의 품에서 울었다. 그때 깨달았다. 글쓰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그렇게 다시 살아온 글 <우리 1년만 속초에서 여행하듯 살아 볼까?>로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다.      


1년 후 오늘 브런치 글이 눈앞에서 또 사라졌다. 그때의 경험이 생각나서 그가 했던 것처럼 뒤로 가기를 계속 클릭했다. 아무리 뒤로 가도 글은 돌아오지 않았다. 괜히 눌렀어. 오빠의 황금 핑거에 부탁했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이미 소용 없었다. 화면을 아무리 이리저리 돌아다녀봐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막 글을 마치고 발행을 하고 집에 가서 오후에는 편히 쉬려 했었는데. 모든 계획이 떠나가고 참담한 현실만 마주하고 있었다. 터벅터벅 무거운 몸을 끌고 집으로 향했다. 3시간 동안 쓴 글을 날렸어. 한마디 던지고 소파 위에 몸을 던졌다. 짧은 위로를 건넨 남편은 닭갈비를 마저 요리하러 갔다. 에어컨 바로 앞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찬 바람이 뼛속까지 후벼 파는 기분이었다. 그대로 있으면 얼어죽는데도 움직일 기분이 아니었다. 멍하고 차갑게 얼어가고 있었다.

안 먹는다는 나를 그가 일으켜 세우고 끌고 갔다. 식탁 위에는 빨갛게 익은 닭갈비와 하얀 소면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기쁜 마음으로 반겼을 음식들인데, 억지로 한입 입안에 집어넣었다. 종이 씹는 표정으로 먹고 있는 내게 그가 말했다.

"글이 지워졌을 때 원래 매운 닭갈비 먹고 잊어버리는 거야. 회사원들이 퇴근하고 매운 닭발 먹듯이"


평소 매운걸 잘 못 먹는다. 그래서 우리 밥상에는 매운 음식이 거의 없다. 마침 오늘 먹기로 한 반조리 제품이 매운맛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닭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매운지도 모르고 먹고 있던 입안이 화~~ 학 하고 데워졌다. 혀 안의 세포들이 돌아왔다. 콧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분명 콧구멍에서 내리는 물인데 울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울면서 닭갈비를 먹었다. 울고 나니 닭갈비가 맛있어졌다. 소면까지 후루룩 말아 쌈까지 싸 먹었다. 싹싹 남김없이 비웠다.

매운맛의 힘일까, 남편의 매콤한 위로 때문이었을까. 입안의 매운맛이 가실때쯤 허망했던 마음도 같이 사라졌다. 다시 글을 쓸 힘이 생겼다. 퇴근하고 매운 닭발을 즐겨먹는게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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