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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Jul 27. 2021

발행 취소한글은 작가의 서랍에 보관합니다

방금 발행 취소를 눌렀다.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글이었다. 브런치에 50번째 올린 글이었고 이틀 동안 정성스레 쓴 글이었다. 나는 왜 발행 취소를 눌렀을까?

글을 쓸 때 제목부터 채워놓고 적어 내려 간다. 첫 제목은 <집순이의 탄생>이었다. 30년 넘게 살아온 본가에서 지내는 동안 집에 있는 것이 갑갑했고, 30년 넘게 내가 집에 있는 걸 싫어하는 줄 알고 살아왔다. 5년간 비움을 생활하하고 그 과정 속에 집은 아늑하고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변화로 집에 있는 것이 좋아졌다. 집에 있으면 머리도 아프고 우울하기 까지 했던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첫 글은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문제는 다음부터 시작된다. 다 쓴 글을 한번 훑어보았다. 제목이 빈약한 것 같았다. 집순이 대신 미니멀 5년 차의 고백으로 바꿨다. 내용도 중간 부분에 미니멀 과정들을 추가로 집어넣었다. 다시 훑어보았다. 미니멀 5년 후의 변화로 제목을 바꿨다. 발행을 했다.

발행을 하고 초록색 점을 기다린다. 아무 소식이 없다. 망했다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초초해지기 시작한다. 예감은 맞았다. 1시간이 좀 안돼서 발행을 취소했다.

'발행 취소한 글은 작가의 서랍에 보관합니다.'

차가운 글자들과 함께 50번째 나의 글은 서랍에 보관되었다. 나의 꿈도 어두운 서랍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멍하게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도서관을 나왔다.


집에 와서 다시 서랍 안의 글을 읽어보았다. 몇 번을 읽으며 퇴고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서랍 속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글에는 인정받고 싶은 나의 마음이 읽혔다. 글을 올리자마자 '좋아요'를 받고, 브런치 에디터의 pick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보였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 것이 아니라 타인이 좋아할 만한 글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구멍 크기가 다른 레고 블록을 맞추는 것처럼 버벅거렸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 고를 반복했었다. 재미있는 글 쓰는 시간이 무료하고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다.

예전에 썼던 나의 글들을 돌아보았다. 좋아요가 많지는 않아도 글에 대한 순수함이 담겨있었다. 글을 쓰는 순간을 즐기는 마음, 무엇을 바래서 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썼던 글들.

진짜 망한 글은 좋아요가 없는 글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글이 망한 글이다. 


이 글을 쓰고 나자 마음속 썩은 사랑니를 뽑아내는 기분이 든다. 글로 쏟아내자 마음이 후련해진다. 작가의 서랍은 꿈이 닫히는 곳이 아니었다. 잠깐 쉬며 나를 되돌아보고 새로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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