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냄새

by 주하

바닷가 마을에 살고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도시에서는 잘 없던 운무가 일상이 되고 있다. 땅이 흠뻑 젖어들고 멀리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고 공기 중에는 뿌연 안개로 가득 차 창밖을 내다볼 때면 꼭 구름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아. 물을 한껏 머물고 있는 스펀지 같아서 구름 속에 서 있으면 마음까지 어느새 촉촉이 젖어들게 돼. 비를 그렇게 듬뿍 들이키고 나면 몽롱해지는 기분이 들어. 이런 날이면 이 시골에서는 달리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기에 이불속에 몸을 돌돌 말고서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를 보며 맥주 한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데. 유독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비 오는 날의 색 블루를 닮은 영화 본 투 비 블루.




"정교함이 떨어져서 인지 소리에 개성이 생겼어

예전의 쳇 같지만 더 깊어.“

자신의 생을 담은 영화 촬영으로 재기를 앞두고 있던 쳇은 예전에 빚진 마약상에게 처참히 폭행을 당해 치아 전부를 잃게 된다. 트럼펫 연주자에게 치아가 없다는 것은 피아노 연주자에게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모두 그에게 연주자로서의 삶은 끝이라 단언했지만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트럼펫을 다시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회복되지도 않은 잇몸에 틀니를 끼고 트럼펫을 피를 흘려가며 연주하고, 보통 사람 같으면 포기했을 고통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서 다시 자신만의 소리를 찾았고. 이는 전보다 부족함은 생겼지만 음색에 쳇만의 소리가 더해져 더욱 그윽한 깊이를 얻게 되었다.

"난 연주가 하고 싶어요

그게 전부라고요

인생을 되찾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게 마지막 기회잖아요."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 끝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재즈 바, 버드랜드에서 다시 잡은 무대에서 쳇은 자신의 인생을 되찾는 마지막 기회를 붙잡고픈 열망 앞에 사랑하는 연인, 제인과의 약속을 뒤로하고 헤로인에 다시 빠져들어. 마지막으로 건네는 대사 'Born to be blue'

'Born to be blue', 태생적으로 우울한 뜻으로 쳇이 자기 자신에게 전하는 말로, 그의 생에 보내는 편지이기도.


그가 타고난 우울함이야말로 재즈 속 그의 트럼펫 연주를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흐느낌'이라는 찬사와 함께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는 명반으로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비록 삶 전체에서 약물의 중독에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에서는 풍족하지 않았을지라도.

피나는 고통을 이겨내고서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용기와,

거기에 자신의 영혼을 푹 담글 수 있는 열정이

그의 연주를 들을 때면 가슴 시리도록 아련함을 깊은 곳에서 밀려오게 한다.





My funny valentain

나의 발랄한 발렌타인

귀엽고 유쾌한 발렌타인

당신은 날 맘속 깊이 웃게 만들어요

당신 모습은 우스꽝스러워서

사진 찍기엔 어울리지 않아요

하지만 내겐 당신만한 예술 작품도 없어요

당신의 모습이

그리스 조각보다 못났나요?

입 모양도 조금 이상한가요?

입을 열어 하는 말은 세련됐나요?

하지만 머리 스타일은 바꾸지 말아줘요.

날 생각해주지 않는다 해도

머물러줘요 발렌타인

머물러요

매일이 발렌타인데이인 것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와 꿈이라는 한 글자만 바라보고 사업을 시작했다. 모두가 반대하던 길이었기에 꼭 꿈을 이뤄서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밤 낮으로 휴가도 없이 미친 듯이 일에 매진했었고, 꿈에 가까워져 갈 때쯤 지쳐 있던 우리는 2년만에 처음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정동진을 향하는 겨울 밤 기차에 몸을 실었다. 6시간정도 걸려 도착한 정동진에는 이른 겨울 차가운 새벽이 아스라이 바다위에 깔려 있었다.

오랜만에 탁 트인 곳에서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며 가벼워졌고 딱히 무얼 한 기억도 나지 않지만. 한 가지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사람이 거의 없어 텅빈 겨울 해변을 걸으며 바다를 마주했을 때이다. 친구와 나, 바다 말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 할 일도 없는 시간앞에서 순간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외침은 쌀쌀한 겨울 바람에 실려 파도를 타고 바다로 향했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 정작 필요한 것은 아무말 없이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때 바다는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2년 아니 오래도록 내면에 쌓아두고 내 뱉지 못한 우울의 소리를 바다 끝의 누군가에게 전하기라도 할 것처럼 토하듯 외쳐대던 함성을 바다는 깊은 파도로 안아주었다.

이 날 이후로 바다를 마주보고 있으면 매달려 있던 깊은 절벽에서 내려와 땅에 온전히 발을 딛고 있는 기분이든다. 그때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해변에 앉아 조용히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시끄러웠던 마음이 고요해지고 잠시라도 평온을 얻게된다.


예전에는 단지 바다를 좋아해서, 바다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바다의 블루가 내 유년시절 시련의 풍경이 되어주었던 블루와 닮아 있고,

그 푸른 바다를 바라볼때면 청춘의 아픔이 아무 의미 없는 상처가 아니라

영혼을 더 깊이 있게 다듬어 주는 유용한 포옹으로 다가오기에

바다는 언제고 나의 구원이 되어준다는걸.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가슴의 상처가 있고 내면의 풍경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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