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 속 시계는 항상 느리게 흘렀다. 꽤 많은 일을 했고 열심히 놀았어도 마음속 시계는 항상 더디게 흘러갔다. 그럴 때면 '나는 아직도 10살이네... 언제 커서 어른이 되려나?' 하는 궁금증이 따라다니곤 했다.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틈틈이 이어갔어도 그 속도는 그대로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는 사회인이 되면서 그 시계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부터 품었던 꿈, 멀쩡한 대학 졸업장을 두고서 사업을 한다는 꾸중과 염려로 덮어졌고, 할 수 있다는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해 잠자는 시간 빼고 일에 매진했다. 그렇게 2년간 의류 쇼핑몰 운영에 푹 빠져 살았다. 이렇다 할 휴가도 한번 가지지 못하고 일에 빠져 산 결과 성공이라는 수치에 다 달았고 주변 모두의 인정을 받았지만 번아웃이 찾아왔다. 20대의 순수한 열정만 가득했던 그때는 몰랐었다. 핸드폰처럼 사람에게도 할당된 배터리가 있다는 것을.
자식 같던 쇼핑몰을 눈물을 흘리며 정리했다. 거대한 상실감이 찾아왔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기분전환도 할 겸 해외연수를 다녀오라고 넌지시 건넸다.
그렇게 겨울에서 여름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한겨울 쌀쌀한 날씨에 맞게 걸쳤던 두꺼운 옷은 따뜻한 여름 날씨에 어울리는 가벼운 의상으로 갈아입고서 캐리어를 끌고 길을 나섰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차로 1~2시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하는 누사에 예약해 둔 홈스테이로 향했다.
한적한 거리에는 그림같이 멋진 단독주택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고 길 사이사이마다 브라키오 사우르스가 먹을 것 같은 나뭇잎이 달린 거대한 나무가 자리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반갑게 눈인사를 하거나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내 나도 마주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가벼운 인사를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지내게 된 방 앞에는 비밀의 화원에 나올 것 같은 신비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졌다. 의자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만 보아도 두 눈으로 가득 들어오는 초록의 신록과 재잘거리는 새소리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랭귀지스쿨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와서 쉬거나 근처 바닷가로 향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였다. 우린 비키니를 입고 그 위에 비치타월을 걸치고 맨발로 걸어갔다. 아주 어릴 때 맨발로 놀았던 기억을 제외하고서 맨발로 보행을 해본 것은 거의 처음이어선지 무척 어색했다. 처음에는 바닥에 뾰족한 것이 없나 조심한다고 땅바닥만 보고 걸었는데 며칠이 지나니 나도 다른 이들처럼 맨발이 편해졌다.
등 뒤로 넘실거리는 바닷물이 따스하고 부드럽다. 신나게 놀고서는 비치타월을 깔고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선샤인비치 이름처럼 햇살이 아름답게 에매랄드 물빛 위로 부서지고 바다 전체가 하나의 보석이 된다.
해변에 가지 않는 날이면 혼자 근처 공원에 가서 책을 읽곤 했다. 벤치에 앉아 온화한 바람과 나무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으면 평온함이 찾아왔다. 떠나온 한국도 내려놓은 일도 생각나지 않았다.
랭귀지 코스를 끝내고 브리즈번, 멜번, 시드니 등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선샤인비치를 지척에 소유한 작은 마을이다. 저녁 6시가 되면 가게들이 문을 닫고 거리는 더 고요해지고 사람들은 가족과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tv도 재미있는 채널이 많이 없어서인지 잘 안 보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함께 먹는 식사시간이 의미가 있어 보였다. 식사 또한 풍성한 샐러드와 스테이크, 맛있는 디저트까지. 정성스러운 메뉴와 함께 가족들 간의 대화가 함께 했다. 주말이면 별다른 문화시설이 없는 이곳에서는 주로 해변에 가거나 공원이나 집에서 바베큐 파티를 즐겼다. 공원에 누구나 사용가능한 바베큐 시설이 잘 갖춰진 모습을 보면 이들의 문화가 잘 보였다. 서로 같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삼삼 오오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고 별미로 마늘바게트까지 구워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탁 트인 자연이 어우러진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들과 오가는 즐거운 대화들을 나누다 보면 빨리 움직역던 마음속 시계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평일인데도 점심을 먹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거나 누워서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 사이즈가 어떴든 짧은 숏팬츠나 미니스커트를 거리낌 없이 입는 여자들, 어디든 길바닥에 털썩 편하게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까지... 누사 이외의 지역 또한 규모는 더 커졌지만 어딜 가든 나무들은 한가했고, 사람들의 표정은 온화했으며,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지금까지 내가 살던 곳과 정 반대의 모습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답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셰어하우스에서 지낼 때 일이다. 인터넷이 갑자기 안 되는 것이다. 마스터 언니에게 이야기하자 돌아온 답에 입을 다물수 없었다. "여기는 뭐든 넉넉잡아 한 달은 기다려야 돼. 한국처럼 바로 오지 않아" 한국에서는 as든 출장 서비스이든 아무리 길어도 1주일 내로 받아볼 수 있었다. 빠르면 바로 다음날에도.
한국처럼 '빨리빨리' 단어가 없었다. 현지인들은 이 속도를 당연시 여기고 있었고 나 같은 타지인들에게나 답답함이 존재할 뿐이었다. 야근 문화도 잘 없고 6시 땡 하면 칼퇴근을 한다고 했다. 현지에서 오랜 생활을 이어온 마스터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이렇게 여유롭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시계가 천천히 흘러서였다.
그동안 한국에서 누렸던 빠른 서비스들이 누군가의 '빨리빨리'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자 빠른 속도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빨리빨리' 행동하기 위해 그들의 스케줄은 빽빽하고 빈틈이 없었을 것이다. 여유 없는 업무표는 마음의 여유를 앗아가고, 점심시간에 공원에서 한적하게 산책을 하거나 일광욕할 여지를 주기 힘들 것이다. 야근이 잦은 일상으로 인해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처도 웃음대신 무표정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2년 내내 꿈이라는 목표, 성공이라는 목적을 바라보고 하루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 '빨리빨리'의 쳇바퀴 속에서 굴러다녔다. 매일 야근의 연속이었고, 일에 찌든 나는 처음 보는 타인에게 보낼 웃음은 남아있지 않았다. 쉬는 날에도 머릿속에는 일 생각이 그득했고 일에 분리되어 온전한 쉼을 가져보질 못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더 이상 이들의 느린 시간이 불편하지 않았다. 이들의 문화로 받아들여졌고, 나 또한 이 문화에서 살고 싶다는 작은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