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주제는 바다야

by 주하

여름이 다녀간 바다는 쓸쓸하다. 해변을 가득 채웠던 8월의 열기와 그 속에서 벗어나려는 인파들의 흔적들은 모래 위에 쌓여있다. 파도는 이제야 편히 쉬듯 잔잔하게 물결을 밀어내고 가져가고 있다. 그네 벤치에 앉아 옆 자리를 바라본다. 항상 누군가 있었던 자리가 비어있다. 빈 공간에 좋아하는 시집 한 권 올리고 바다를 바라본다. 항상 함께하던 곳을 혼자 있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빈자리도 느끼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장소와도 온전히 독대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혼자 마주한 바다에는 아무도 없다. 등 뒤로 뛰엄 뛰엄 지나가는 행인의 걸음소리만 들려올 뿐.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나 사이에는 아무도 없다. 함께 왔던 이들이 스쳐 지나가면서도 이 생소한 기분이 낯설었다. 바다에 그렇게 자주 왔으면서 혼자 온 적이 없었다는 게, 이 낯선 바다가 놀라웠다.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을 감는다. 하나의 파도소리가 여러 개로 나뉘며 다가온다. 편히 쉬고 있는 듯한 바다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속 종알거림도 잔잔해진다. 사람들의 소리는 사라지고 새들의 소리만 가득 허공을 메우고 있다. 땅 위에서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 하늘을 영위하며 우는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 가을이 묻어 있는 바람은 아기 볼처럼 보들보들 몸을 훑고 지나간다. 더위에 녹아 굳어있던 카라멜같았던 마음이 다시 반듯해지는 기분이다. 한참 뒤에 지그시 눈을 떠본다. 무리를 지은 새들이 서로 멀어지며 하늘로 사라지고 있다.




천국에는 주제가 하나야.
바다지.



며칠 전 본 영화 속 대사는 의문을 던졌다. '왜 천국의 주제가 바다일까?'

천국이 어디인지 모르고 어떤 모습인지 모르지만, 감았다가 다시 뜬 눈앞에는 천국이 보이는 것 만 같았다. 많은 영화나 소설 속에 바다는 죽음과 관련이 많다. 주인공들은 죽음 앞에, 죽음이 다가올 때 바닷가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여행하며 생을 회상하고 추억한다. 영화 <노킹온 헤븐스 도어>에서도 죽음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바다를 생에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그곳으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목적지, 그 들 눈앞에는 장엄한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 앞에서 마감하는 한 인간의 삶이 마주하는 순간은 아름다웠다. 시인 메리 올리버의 말처럼 '모든 것들이 언젠가 다른 모든 것들의 일부가 되는 곳'이 바다 같았다. 바다를 건너면 생의 기억들은 바다에 뿌려져 파도가 되고 그 끝 천국의 문에 다다를 것만 같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 앞에서 이루고 싶은 소원들을 적어나간다. 여러 개를 적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때문에 서로의 번호를 하나씩 골라 소원을 정해준다. 영화속 그들의 심정을 상상하며, 아무도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수첩에 나의 소원들을 적어보았다. 삶에서 꼭 이루고 싶은 소원들, 진정 하고 싶은 일들이 뭐가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예쁜 가족사진 찍기

가족들과 예쁜 곳으로 여행 가기

바다가 나오는 소설 쓰기

사진첩 정리하기

오븐에 빵구워 보기

혼자 여행 가서 읽고 싶은 책 쌓아두고 편히 즐기기

불멍 하며 친구랑 수다 떨기

하루하루 감사하기

하루를 더 재밌게 보내기

더 자주 웃기

지금 이 순간만 바라보기

가족들에게 한 명씩 포근히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기


다 적고 나니 보였다. 진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닌 주변에 항상 깔려있지만 놓치고 지내는 작은 것들이라는 것을.


인생은 여행과 같다. 우리의 여정 끝에는 누구에게나 죽음이 있다. 다만 그 여행의 걸음수만 다 다를 뿐 언젠가는 죽음에 다다른다. 걸음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가야 할 걸음 수 가 더 많이 남았다면 죽음은 그저 멀게만 느껴진다. 영원히 함께 할 것만 같던 아버지의 죽음을 보내고, 어머니의 걸음도 줄어만 가는 아쉬움이 느껴질 때 생의 유한성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지난 통화 끝에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번 여름에 함께 휴가도 한번 못 갔네. 속초 와서 바다라도 함께 봤으면 좋았을걸....' 괜찮다며 내년에 함께 하면 된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전화를 끝는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엄마와 함께 보낼 여름이 몇 번이나 있을까? 답을 떠오르니 짠 바닷물을 들이부은 듯 속이 쓰렸다. 나와 아이들과 보낼 여름은 몇 번이나 있는 걸까? 하고 나의 여름도 내다보았다. 엄마와의 여름도 나의 여름도 몇 번이 남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존재하며 지금 여기가 소중하다는 것이다.

한참을 그네에 앉아있는데 사람들이 오더니 여름 내내 바다 앞을 두르고 있던 펜스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빨간 글씨가 쓰여있던 하얀 긴 줄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바다와 나 사이에 두르고 있던 띠가 사라지듯 바다와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바다와 가까워질 수 록 더 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되어 갈 수 록 내가 더 좋아지고 있다. 내 삶을 더 다정하게 채우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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