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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Nov 10. 2023

엄마에게 서재가 필요한 이유

나는 엄마를 벗고 서재로 출근한다.

아이들과 남편이 등원과 출근을 하고 나면 나는 서재로 출근한다. 내려있던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연다. 창밖의 동해바다와 눈인사를 나누고 바다향이 풍기는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창문을 열어둔 채 오늘 읽을 책들과 마실 차나 커피를 가져온다. 어느 정도 상쾌함이 차고 나면 창문을 닫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준다. 음악을 들으며 나를 위한 차를 마신다. 

이곳에서만큼은 오롯이 내가 된다. 나를 위해 내린 차 또는 커피 한 잔, 나를 위해 준비된 책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노트북, 책상, 의자까지. 그리고 나만을 위한 서재라는 공간까지. 

나를 위한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글쓰기, 독서를 이어가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행위는 엄마를 벗는 것이다. 모닝루틴을 마치고 서재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엄마에서 내가 된다. 

맨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안방만 우리가 쓰고 나머지 방 두 개는 아이를 위한 방으로 쓰려했다. 막 돌이 지난 아이에게 방은 하나면 충분했고, 끝에 방은 새 식탁을 사면서 식탁으로 쓰던 이케아 테이블을 두었다. 이왕 테이블이 있으니 남편이 내게 서재로 사용하라고 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가 한 말이었다. '나의 서재?'라는 단어를 들으니 마음이 설레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온통 아이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가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니 말이다. 글쓰기도 좋아했던 나는 이왕 사는 거 오래 앉아 글을 써도 편한 의자를 고르고 골라 구입했다. 테이블보다 두배 이상 비싼 의자를 구입했고, 이게 나의 서재에 처음 투자한 순간이다. 

의자는 돈값을 하고 있다. 바닥도 넓고 등받이도 편하고 안정적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여러분만의 방을 가지라고 부탁할 때, 나는 여러분에게 실재를 마주한 채 활기 있는 삶을 살 것을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버지니아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이야기한 내용이다. 여기서 버지니아울프가 말한 '실재'는 세상과도 같다. 이 세상은 바로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세상이 아닌, 자기가 꿈꾸는 대로 창조해 가는 세상말이다. 이 세상에서 보다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을까? 


나만의 서재를 소유하게 된 지 4년이 되었다. 지난 4년간 아이 둘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와 슬럼프를 겪으면서 간헐적이고 또는 장기적인 공백기간이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글쓰기와 독서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나만의 루틴이다. 연간 150권 이상의 독서를 이어오고, 다이어리와 독서노트 그리고 블로그 가끔 브런치 등등 기록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 와중에 글들을 모아 투고도 해보고, 실패와 좌절도 해보았다. 아직 사회적인 돈을 생산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만의 속도로 한 걸음씩 어제의 나보다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도전을 하고 좋아하는 루틴을 쌓아가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명언이다. 즉 새로운 결과를 기대한다면 새로운 행동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는 의미가 되겠다. 

내가 4년간 이렇다 할 사회적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매일 서재로 출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새로운 기대'감 때문이다. 첫째가 돌이 되기 전까지 육아에만 전념하던 때가 떠오른다. 경기도의 남편 직장 바로 앞에 살았던 시절. 양가 부모님 댁은 다 멀었고, 서울에서만 살아온 나는 타지에 와있고 기댈 곳은 남편뿐이었다. 육아는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고, 남편은 매일 야근으로 늦게 집에 왔다. 나는 지쳐갔고 육아 우울증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고 갔다. 그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돌이켜 보면 바로 '기대'가 '새로운 나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겠다. 

하루종일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육아의 의무만 영원할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시야가 좁혀져 멀리 내다볼 수 없었다. 돌이 지나고 육아가 좀 적응이 되고 바닷가마을에 살게 되면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좁은 세계에서 나와 넓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되었다. 


나에게 서재란 꿈이 자라는 공간이고, 서재로 출근하는 것은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아직 돈을 벌고 있지 않더라도, 나만의 공간, 나만의 방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설레고 활기 있는 오늘을 보내게 된다. 


꼭 '자기만의 방'이 '방'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방'은 '공간'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 공간에 '서재'라는 의미를 부여하면 그곳은 나의 서재가 된다. '자기만의 공간'의 크기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식탁 테이블 한켠, 베란다 테이블 한켠, 안방 테이블 한켠 등등 나만을 위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그곳에서 꾸준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가고 '나'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을 쌓아간다면 그곳이야말로 나의 꿈이 자라는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서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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