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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Nov 21. 2023

아이 둘 엄마의 3년간 혼캉스 이야기

스스로에게 주는 휴가


아이스크림은 언제나 빨리 녹는다.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사라진다.

1박 2일의 아이스크림 같던 시간들. 어느새 모두 녹아버리고 사진만 남아있다.

생생한 기억까지 휘발되어 버리기 전에 기록하기로 한다.

아지트 카페까지 가는 길에 모두 사라져 버릴까 하는 마음에

로비에 캐리어도 그대로 둔 채 노트북을 연다.





1년에 이틀,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고 있다.

2021년 11월부터 시작해서 2022년 9월,

그리고 2023년 11월 20일 어제까지.

횟수로 3년 차가 되었다.


2021년 11월 26일 블로그에 '나 혼자 호캉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나 혼자 호캉스'를 줄이면 '혼캉스'가 된다. 나의 혼캉스 루틴은 이렇다.

여행을 떠나는 오전 작은 캐리어를 꺼내 짐을 싼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기에 짐을 다 싸는데 몇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어린아이 둘 포함 4인가족 여행의 캐리어를 쌀때와 대조적이다.

혼캉스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심플하다.

홀로 끌고 다녀야 할 캐리어이기에 딱 나 혼자서

감내할 수 있는 양과 무게만 담게 된다.


혼캉스에 필요한 준비물로는 책탑, 파자마, 입욕제 이렇게

세 가지다. 냉장고에 사과가 있음 사과도 가져간다.

3년 동안 같은 호텔에서 혼캉스를 이어왔다.

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전면의 탁 트인 바다뷰.

모든 객실이 바다뷰인 이곳.

내가 좋아하는 청아한 고성의 바다를

오롯이 소유할 수 있는 통창을 가진 숙소다.



짐을 풀고 파자마로 갈아입는다. 올해부터 준비한

루틴이다. 그동안 가장 사기 아까웠던 옷이 있다면

잠옷이었을 거다. 잘 때만 입는 옷에 돈을 투자하는 건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파자마 브랜드 중에서 평이 좋은 브랜드를 골라

주문했고, 왜 사람들이 잠옷에 돈을 쓰는지 알게 되었다.

외출복에서 파자마로 갈아입었을 뿐인데 보다 쉼이

특별해진다. 그냥 뒹굴거리며 늘어져있는 기분이 아니라

나의 쉼을 보호받는 기분이랄까?



파자마를 입고 침대 안으로 파고든다. 깍듯하게 만들어져 있는 뽀얀 침대의 사각사각 소리를 만질 때가 혼캉스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한참 침대 위에 뒹굴거리며 바다 풍경을 바라보다가 가져온 책들을 꺼낸다. 침대 위에 읽고 싶은 순서대로 책탑을 쌓는다.

블루투스 액자 스피커에 좋아하는 노래를 튼다.

베개에 기대어 '달팽이 식당' 소설책을 읽기 시작한다.

시원한 캔맥주를 홀짝홀짝 곁들이면서.



1시간 정도 읽고 편의점에서 사 온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집에서라면 아이들에게 항상 뺏겨버리는 아이스크림.

혼자서 여유롭게 달콤한 바닐라맛을 즐긴다.

1시간 정도 또 책을 읽다가 해가 질 무렵 반신욕을 시작한다.

멀리 산 너머로 지고 있는 석양을 보며 즐기는 반신욕은

쉼 그 자체다. 1년 동안 마음속 구석구석 쌓인 먼지들이

깨끗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아로마 향초 블랙 라즈베리 바닐라 향 사이로 밤의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반신욕을 하고 머리를 말리기 전, 룸서비스를  주문한다. 작년까지 치킨과 감자튀김 세트를 먹었고 이번에는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한다. 머리를 다 말리고 책을 읽고 있으니 도착한 룸서비스.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한 끼 식사를 바라보고 있으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아이 엄마가 되고 한 끼를 차린다는 게 얼마나 손이 가고 힘이 드는 일인 줄 알게 되었기에.

이 호텔의 단점은 주변에 맛집이 멀리 있는 점이고, 장점으로는 룸서비스가 맛있다는 것이다. 룸서비스 맛집이야 말로 혼캉스에 최적화한 곳이 아닐까 싶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객실 앞에 빈 그릇을 둔다.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룸서비스의 또 다른 장점.


저녁을 먹고 바다를 보면 어느새 어둠이 내려있다. 커튼을 치고 은은한 조명을 남겨두고 또 책을 읽는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쭉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시간. 책을 볼 수 있는 시간. 만큼 행복한 시간도 없다. 나에게는.

다 읽어갈 때쯤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새 잠이 드는 밤.



다음날 일찍 저절로 눈이 떠지는 아침.

커튼을 열어보니 연한 핑크빛 바다가 인사한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몇몇 거닐며 일출을 누리고 있다.

이 정경을 바라보며 집에서 가져온 사과를 씻어 껍질째 먹는다.

체크아웃이 몇 시간 남지 은 이 시간,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본다.

지난 1년간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2021년 첫 시작은 혼캉스였다.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이 하고 싶었다. 아이 둘을 낳고 기르다 보니 내가 흐려졌고, 나의 시간에 목말랐다.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뻤지만, 혼자이고 싶었다.

딱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새로운 장소도, 이틀간 자유 시간도, 이를 위한

비용도 필요했다. 그렇게 몇 년간 마음속에 떠다니던 소망을

마침내 남편한테 고백했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혼자만의 여행에 가장 필요한 건 떠날 수 있는 용기였다. 떠나고 보니 나에게 돈을 안 쓰고, 시간을 안 쓰고, 투자를 하지 않던 이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공동양육자의 이해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1박 2일을 다녀오면 다음에

남편이 다녀오는 식으로 말이다. 비용도 한 달에 3만 원씩

1년간 모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11월 같은 겨울 비수기 시즌은 호텔 비용이 착해진다.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실질적인 요인보다는 내가 '나'를 위해 투자하는 용기였다. 내가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나'를 돌보는 배려였다.

아이 엄마로 살아가면서 항상 남에게 투자하고, 남에게 돈을

쓰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뒷전이었다. 여기서 '남'이 자식이 되면 그 강도는 강하고 습관은 피부에 달라붙듯 당연해진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에게, 살림을 하는 주부에게는 휴가가 없다. 직장을 다니거나, 회사를 다니면 휴가가 다 있는데 왜 아이 엄마에게, 가정 주부에게는 휴가가 따로 없을까? 의문이 들었다.

모두 떠난 공간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깨끗이 닦는다. 어질러진 장난감을 제자리에 두고 옷을 빨고 식기를 정리한다. 아이의 옷을 사고, 간식을 준비하고, 신나게 놀아준다. 남편의 옷을 정리하고, 가족을 위해 한 끼 식사를 차린다. 분명 무수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그 노동은 무형에 가깝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1년에 한 번 이틀간 혼캉스를 떠난느것은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는 것이다.

아무도 부여하지 않았던 휴가를 스스로에게 선물함으로써

보이지 않던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가.

매년 혼캉스를 떠나 바다를 마주했던 이유가.

바로 나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체크아웃을 앞두고 바다를 바라보며

나 자신을 꼭 안아주었다.




'주하야, 그동안 수고했어.


정말 수고 많았어.


사랑해.


고마워.'


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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