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욕을 하고 머리를 말리기 전, 룸서비스를 주문한다.작년까지 치킨과 감자튀김 세트를 먹었고 이번에는 해산물 토마토파스타를 주문한다. 머리를 다 말리고 책을 읽고 있으니 도착한 룸서비스.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한 끼 식사를 바라보고 있으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아이 엄마가 되고 한 끼를 차린다는 게얼마나 손이 가고 힘이 드는 일인 줄 알게 되었기에.
이 호텔의 단점은 주변에 맛집이 멀리 있는 점이고, 장점으로는룸서비스가 맛있다는 것이다. 룸서비스 맛집이야 말로 혼캉스에 최적화한 곳이 아닐까 싶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객실 앞에 빈 그릇을 둔다. 설거지를 하지않아도 되는 게 룸서비스의 또 다른 장점.
저녁을 먹고 바다를 보면 어느새 어둠이 내려있다. 커튼을 치고은은한 조명을 남겨두고 또 책을 읽는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쭉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시간. 책을 볼 수 있는시간. 만큼 행복한 시간도 없다. 나에게는.
다 읽어갈 때쯤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새 잠이 드는 밤.
다음날 일찍 저절로 눈이 떠지는 아침.
커튼을 열어보니 연한 핑크빛 바다가 인사한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몇몇 거닐며 일출을 누리고 있다.
이 정경을 바라보며 집에서 가져온 사과를 씻어 껍질째 먹는다.
체크아웃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이 시간,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본다.
지난 1년간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2021년 첫 시작은 혼캉스였다.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이 하고 싶었다.아이 둘을 낳고 기르다 보니 내가 흐려졌고, 나의 시간에 목말랐다.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뻤지만, 혼자이고 싶었다.
딱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새로운 장소도, 이틀간 자유 시간도, 이를 위한
비용도 필요했다. 그렇게 몇 년간 마음속에 떠다니던 소망을
마침내 남편한테 고백했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혼자만의 여행에 가장 필요한 건 떠날 수 있는용기였다. 떠나고 보니 나에게 돈을 안 쓰고, 시간을 안 쓰고,투자를 하지 않던 이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공동양육자의 이해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1박 2일을 다녀오면 다음에
남편이 다녀오는 식으로 말이다. 비용도 한 달에 3만 원씩
1년간 모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11월 같은 겨울 비수기 시즌은 호텔 비용이 착해진다.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실질적인 요인보다는 내가 '나'를 위해투자하는 용기였다. 내가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었다.내가 '나'를 돌보는 배려였다.
아이 엄마로 살아가면서 항상 남에게 투자하고, 남에게 돈을
쓰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뒷전이었다.여기서 '남'이 자식이 되면 그 강도는 강하고 습관은 피부에 달라붙듯 당연해진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에게, 살림을 하는 주부에게는 휴가가 없다.직장을 다니거나, 회사를 다니면 휴가가 다 있는데 왜 아이 엄마에게,가정 주부에게는 휴가가 따로 없을까? 의문이 들었다.
모두 떠난 공간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깨끗이 닦는다. 어질러진장난감을 제자리에 두고 옷을 빨고 식기를 정리한다. 아이의 옷을 사고, 간식을 준비하고, 신나게 놀아준다.남편의 옷을 정리하고, 가족을 위해 한 끼 식사를 차린다.분명 무수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그 노동은 무형에 가깝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