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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Dec 04. 2023

집순이의 탄생

미니멀라이프 8년 차에 찾아온 변화

        

오래된 아파트 34평 집 거실에는 큰 4인용 소파, 맞은편 벽에는 긴 선반장과 그 위에 놓인 TV가 자리하고 있다. TV는 언제나 틀어져 있고 그 소리가 배어있는 물건들이 한가득 선반 위와 안을 차지하고 있다. 베란다에는 2~3개의 장독대와 대형 대야들, 각종 화분들, 안 쓰는 가전제품들, 언젠가는 쓰겠지 하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잡동사니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창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초록산과 나무들을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을 사람이 아닌 이 물건들이 선점하고 있는 것이다. 부엌은 더 포화상태다. 냉장고의 냉동칸은 꺼내도 꺼내도 계속 나온다. 공룡 화석이라도 나올 것 같은, 한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 줄 모르는 블랙홀 같은 공간이다. 식탁 위에는 각종 비타민과 그릇들이 올려져 있고 식탁 옆으로는 다시 활용하려는 비닐들이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다. 

기억 속 어렸을 적 집의 모습이다. 우리 셋을 잘 키워보려고 절약이 몸에 배인 엄마는 소비도 철저히 통제했지만, 물건을 비우는 것도 아끼셨다. 엄마 이건 좀 버려도 되지 않을까? 이야기해 보면, 엄마는 항상 ‘얘는, 이거 언젠간 분명 쓸 수 있을 거야. 그때 없으면 어떡하니?!’라고 대답하셨다. 버리는 행위, 비우는 행위를 아까워하셨다. 

물건들이 가득한 집에서 서로에 대한 온기조차 부족했기에 따스한 대화가 오고 가는 대신 적막감을 제거해 주는 TV소리만 계속 들려왔다. 그래서인지 집에 있으면 항상 답답함을 느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밖에 나가서 바깥공기의 신선함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감기가 걸리거나 몸이 아파서 며칠이고 밖에 못 나갈 때면 몸도 아픈데 마음까지 아파왔다. 갑갑한 마음이 몸을 더 아프게 만들곤 했다. 며칠을 앓다가 밖으로 동네 산책만 나가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정체돼있던 공기가 밖으로 나가고 새로운 신선함을 폐 속으로 흡입할 때면 마음 깊은 곳까지 활력이 차올랐다. 역시 나는 밖에 나가야 해. 집과는 맞지 않아.라는 깨달음과 함께.

그렇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집에 있는 주말이면 꼭 약속을 잡으려 했다. 몸이 피곤하면 하루라도 바깥활동을 하고 들어왔다. 특별한 일이나 약속이 없을 때면 동네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서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나는 99% 밖순이라이프를 살아왔었다.   





            

2016년 결혼을 했다. 그 해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집이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다니! 30년 넘게 살아온 본가와 정말 대조되는 사진들이었다. 나도 이렇게 안락한 공간에서 지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렇게 미니멀 라이프에 발을 디뎠다. 결혼과 동시에 눈을 뜬 단순한 삶으로의 길.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신혼집에 이사 와서 들이려던 그릇과 냄비세트를 구입하지 않았다. 남편이 자취하면서 사용해 왔던 그릇 몇 개와 냄비 두 개를 그냥 쓰기로 했다. 대신 그 돈은 은행에 저축하고 집 구입할 때 보태기로 했다. 신혼집에 올라오셔서 이를 보신 시어머니께서 감사하게도 직접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그릇세트와 냄비세트를 구입해 주셨다. 


또 구입하려 했던 식탁을 사지 않고 책상으로 쓰려했던 테이블을 식탁 겸 쓰기로 했다. 그 외에 자잘한 장식장, 내 집을 꾸밀 수 있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리스트에 담아두었던 인테리어 소품들도 삭제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신혼 2년간은 집 구입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소비를 줄이는데 목표를 두었다. 3년 차에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 용품을 기본적인 것만 들이려 해도 17평 공간은 턱없이 좁게 느껴졌다. 공간이 좁아 새로이 수납장을 들이기는 싫어서 붙박이장을 최대로 활용하려 했다. 우리 물건을 대폭 줄이는 계기가 되었다. 6년 차에 둘째가 태어나고 또 한 번 우리에게 필요공간이 늘어났다. 다행히도 17평 빌라에서 34평 아파트로 이사해 있어서 전보다는 공간이 확장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3인 가족의 짐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새로 태어나는 가족 구성원을 위해 공간은 더 필요했고, 그렇다고 짐이 늘어 집이 좁아 보이는 것은 싫었다. 해서 붙박이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불들을 비웠다. 계절별로 갈아줬던 이불 대신 4계절 모두 사용 가능하고 세탁도 간편한 차렵이불로 바꿨다. 비워낸 공간에 선반과 바구니를 활용해 둘째의 옷장으로 활용했다. 첫째 옷들은 안방 드레스룸의 우리 옷을 비워낸 자리로 옮겼다. 덕분에 옷장을 살 돈도 아끼고, 차지할 공간도 비워낼 수 있어 방을 모습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7~8년 차에는 아이들 장난감과 더는 줄일 수 없을 것 같던 옷들도 비워냈다. 이제는 4계절 옷을 다 옷걸이에 걸어도 빈 여백이 마주한다. 오래전부터 원했던 북카페 거실을 완성했다. 

거실은 더 넓어 보이고 소파는 우리 가족이 편히 기대어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집 어딜 가든 빈 여백이 물건보다 더 눈에 띈다. 빈 공간은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준다.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만 둘러 쌓여있기에 생활의 만족감이 올라간다. 자연스레 그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는 집이 더 좋아진다. 어느샌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무는 날들이 늘어간다. 아이들 등하원 할 때 잠깐 밖에 나갔다 올뿐, 혼자 있는 낮시간에도 집에 머무는 게 좋다. 물론 가끔 아지트 카페에 가서 하는 기분전환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이제는 카페에 오고 가는 시간과 비용 등을 생각하면 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집 서재처럼 최적의 공간이 없다. 글을 쓸 때 책을 읽을 때 한 권만 정해서 보는 것보다 책들과 노트들을 곁에 탑으로 쌓아두고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카페에 갈 때면 노트북과 항상 책 3~4권이 함께였다. 무겁다. 운전해서 가더라도 무겁고, 카페에 세팅하고 다시 챙겨 오고 다 번거롭다. 집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지인의 인스타에서 ‘밖순이 일상’ 문구를 보았다. 순간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밖순이 인가? 집순이 인가?’ 


분명 나의 정체성은 ‘밖순이’였는데, 선뜻 ‘밖순이’라고 인정이 되지 않았다. 요즘 일상을 돌이켜보니 분명 나는 달라져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꼭 카페에 나가서 책을 읽고 돌아오거나 산책이라도 했었던 나와 달리, 지금은 홈카페를 애용하고 있었다. 작년까지 12월이었으면 한참 다이어리를 위해 별을 모으고 있었을 내가, 지금은 관심도 없는 것이다. 집에서 안 나갈 수 있다면 계속 집에만 있고 싶어졌다. 생각이 여기까지 들자 인식하지 못했던 집에 대한 애정이 손에 잡히는듯했다. 그리고 또 하나 ‘집순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내 인생에 들어왔음을 인지했다. 이렇게 ‘집순이’는 탄생하게 되었다.      


미니멀라이프 8년 차 꾸준히 정리를 하고 비움을 했더니 밖순이는 사라지고 집순이가 찾아왔다. 8년 전부터 일관된 집돌이인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어느샌가 그와 동감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이 아직은 낯설다. 집돌이와 집순이가 함께이니 이제 여행을 더 안 가려나? 집순이지만 여행은 가고 싶다. 가장 최고의 여행지가 집이라는 그의 대답을 보니, 나는 아직 100% 집순이는 되지 않았나 보다. 집순이력이 51%일지라도 집이 좋다. 집이 좋아진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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