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하 Dec 04. 2023

매일 쓰기로 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오늘도 글을 쓴다. 겨울이 내린 바다의 잿빛무드를 좋아한다. 차가운 고독이 깊고 고혹적이다. 이 시린 풍경에는 아이스 커피가 어울린다. 혼자 있는 시간의 고독을 더 빛나게 해준다.


초록색 발행을 클릭한다. 연관태그는 알맞은지, 맞춤법과 뛰어쓰기는 잘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수시로 창을 여닫는다. 라고 말할 수 도 있겠지만 더 정확히는 하트가 늘어났는지 보기위해서다. 발행을 하고 1시간은 10분에 한번꼴로 들어와 주시하고, 이 행위는 달이 뜨고 눈을 감을때까지 이어진다. 

불과 얼마전 나의 브런치 글 쓴 후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은 1시간전에 벌써 주말에 저장해둔 글을 발행한 후다. 하트가 몇개인지 처다 보지도 않는다. 오늘의 글을 쓰기위해 키보드를 즐겁게 돌아다닌다. 나는 왜그리도 극심하게 타인의 하트를 기다려왔을까?


브런치는 블로그와 다르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유저에게는 '작가'라는 호칭이 붙는다. 심사에 합격해야 이 타이틀을 달 수 있게된다. 처음으로 나에게 '작가'라는 정체성을 심어준 곳이기에 그만큼 애정도가 남다르다. 이런 마음이 있었으면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적어도 글이 100개 이상은 쌓였어야 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쓰기 시작한 2020년 처음 몇달간은 쓰느 글마다 자주 다음 메인에 오르는 행운이 뒤 따랐다. 다음의 영향으로 조회수도 꽤 높았다. 하지만 다른 작가님들의 빼어난 글들을 읽을때마다 나도 점점 더 잘써야겠다는 부담감과, 하트라도 적게 받는 날이면 어깨가 땅으로 떨어지기 일수였다. 즐거이 쓰던 글들이 힘이 들어가면서 더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슬럼프가 찾아왔고 몇년동안 브런치 방문을 끊었다.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를 이르는 말이 관종이다. 나는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 즉  인종이었다. 좋아요 하트를 받지 못하면 내가 쓴 글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2018년도부터 이어온 블로그는 브런치와는 결이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 블로그는 오랫동안 자주 글을 써온 곳이기에 글을 올리면 바로 반응이 왔다. 해서 글을 올리는것이 편안했다. 

하루는 블로그에 글을 발행하고 이웃님 블로그를 탐방하면서 댓글을 열심히 달고 있을때였다. 오랜 친구가 전화통화중 내게 이야기했다. "너 블로그 가 보니까 댓글이 많더라고. 댓글 다 달면 너 글쓸 시간은?" 라는 질문에 "안그래도 지금 나 블로그 댓글 달고 있었는데..." 대답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이자 현직 작가로 일하고 있는 친구와의 대화는 나보고 진짜 중요한게 뭔지 생각해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았다.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야가 무엇이지?'


답은 '글쓰는 즐거움'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웃님들 글을 읽고 신선한 자극과 소통을 하면서 얻게되는 즐거움 또한 좋아한다. 하지만 이는 내가 블로그를 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부과적인 즐거움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이웃님들 댓글 탐방하는 시간에 나의 글을 더 쓰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 내고 싶던 쓰기의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된것이다. 


브런치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브런치를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타인의 하트를 받기 위해서인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인가? 답은 아니었다. 블로그처럼 '쓰기의 시간', '쓰기의 즐거움'을 위해서였다. 

쓰기는 외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나의 내면에서 창출된느 것이다. 물론 독서와 여러 글들의 인풋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자신의 생각이 묻어나있는 자신만의 글이다. 적어도 나에게 쓰기는 내가 아는 가장 순수한 기쁨의 영역이다.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나다워 진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공기가 탁하다고 숨을 쉴수 없는게 아니란걸 알게되었다. 내가 오늘 쓴 글이 별로일지라도 쓰기라는 행위는 나에게 공기처럼 하루를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삶의 한 부분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트수가 적은 글은 있어도 쓸모없는 글은 없다는것도.


해서 매일 쓰기로 했다. 하얀 공백위에 매일 나를 쓰기로 했다. 단 한명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작가의 이전글 집순이의 탄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