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닿지 못할 아이의 세계는 없을 거라는 엄마의 허상 내려놓기
이제야 고백하지만 지난 13년간 나는 부모로서
은근한 ‘전능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의 완전한 헌신으로 생존과 성장이 일어나는 아기 시절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는 착각으로 아기 안에 빚어진다는 그 ‘전능감’이 사랑스럽고 배려 깊은 아들을 키운 13년간 내 안에도 존재했음을 이제 깨닫는다.
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유지하는 열쇠가 내게 있다고 믿는 마음, 내가 절대 가 닿지 못할 아이의 세계는 없을 거라는 믿음이 한 번도 흔들려 본 적이 없었다. 굳이 마음을 열려 애쓰거나 알려 달라고 요청하지 않아도 아이의 모든 순간은 투명하게 열려있었고 아이의 모든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참으로 고마우면서도 당연했던 우리의 관계, 이렇게 쭉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불안정했던 성장기, 혼자 크는 듯 외로웠던 사춘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겹쳐지던 잿빛은 부모님의 불안정한 관계와 깊은 속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던 이유일 거라고 믿어 왔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나의 성장기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자주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이루는 가정과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불안과 결핍은 건네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남편과 마음을 합하여 아이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한 겹 한 겹 쌓아온 시절이었다. 역시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구나, 아이들은 밝고 안정된 얼굴로 쑥쑥 자라나며 부모를 기쁘게 해주는 시절이 꽤 길었다.
내 어린 시절 부모님과 감히 나눠보지 못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고, 때에 따라 요동치는 아이의 속마음을 함께 나누며 제법 안정된 항해를 해온 시간들이 건넨 부모로서의 전능 감. 우리 아이의 세계가 아무리 확장된다 해도 나는 언제나 아이 곁에서 그 넓은 세상을 함께 항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 마음을 이제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엄마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고민을 분별 있게 보여주는 아이 앞에서,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어도 여전히 낮게 깔리는 그 목소리 앞에서, 가족 모두가 행복해하는 평온한 주말 저녁이라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아이의 등을 보며 내가 사랑하던 ‘그 아이’는 이제 거기 있지 않음을 본다. 엄마와 함께 거닐던 동산을 벗어나 낯설고 험준한 지형을 이리저리 헤매며 걷고 있는, 부모가 만들어준 세상은 더 이상 자신의 세상이 될 수 없음을 알아버린 아이가 길을 나서겠다고 매일 신발끈을 조이는 낯선 모습을 본다.
완전한 합일을 꿈꾸는 건 신생아만의 몫이 아닌 것 같다
엄마와 완전한 합일을 이루지 못한 자아는 연애와 결혼을 통해 다시 한번 꿈꾸지만 그것 역시 이상향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잠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숨을 고르던 자아는 목숨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자녀를 만나며 다시 한번 완벽한 합일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다. 인간의 사랑은 이 부족한 기억력 덕분에 매번 다시 이어지는 걸까. 아이가 기꺼이 부응해준 13년을 끝으로 그 이상향의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한다. 잠시 아찔하기도 하고 울컥 서운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나의 성장기를 곰곰이 되짚어보며 이내 마음을 바로 잡는다.
아이는 크고 있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속도로 자라나고 있다. 아빠만큼 커버린 몸이지만 그만큼 빨리 자라지 않는 마음과 영혼 덕에 매일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부모의 사랑도, 애정 어린 공감도 아이의 혼란을 채우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둘은 별개의 주머니이고 전혀 다른 목적지를 향해 있으니 말이다.
어릴 적 완전한 합일을 느껴보지 못했던 엄마와의 관계는 내 나이 40을 넘어서며 새롭고 깊은 연결감을 선물했다. 긴 연애와 결혼생활 내내 조율하던 남편과의 관계 역시 우리가 완전한 하나일 필요 없이 둘이어서 더 크고 단단한 세계로 들어왔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 내 아이와의 관계가 새롭게 건넬 다음 페이지를 기대한다. 전혀 새롭고 풍성할, 아이가 빚어낸 그 세상이 안전히 운행할 때 기꺼이 열어준 그 문으로 걸어 들어갈 시간을 기대하며 기다리려 한다.
지난 13년간 이 모자란 엄마에게 전능 감을 건네준, 여전히 꿀물 뚝뚝 떨어지는 눈길이 자동으로 발사되는 아들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심리적 재탄생을 겪고 있는 아이의 사춘기를 축하하며 한 발 물러서 응원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