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먼, 익숙하지만 낯선 강남 산책
간단히 샐러드를 먹고 길을 나섰다. 어제의 한계를 넘고 싶어서일까? 오늘은 정말로 가보지 않은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대로가 아닌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골목길이라고 다 색다른 것은 아니다. 비슷한 길들이지만 건물과 상가들이 다를 뿐이다. 촌스럽게 두리번거리며 길을 걸었다. 조금은 빨리 걸었다. 멀리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거기가 거기지만 그래도 가보지 않은 길을 따라 걸었다.
어제와는 달랐다. 무언가 재미있었다. 거리의 상점들을 지나면서 구경에 참 재미있었다. 예전에 뉴욕엘 혼자 여행한 적이 있었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시작으로 월스트리스, 차이나타운, 코리아타운, 브로드웨이, 타임스 스퀘어, 센트럴 파크, 콜럼비아 대학까지 걷고 또 걸었다. 생각보다 멀지 않았고 걸을만했다. 지도에 표시해둔 거리와 상점,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들을 둘러보았던 그때가 기억났다.
익숙한 강남이지만 가보지 않은 곳이 많았다.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마치 강남에서 한 달 살기 같이 구석구석 살펴보는 것 같았다. 1시간 남짓의 강남 산책은 뉴욕을 걸었던 기억과 함께 가깝지만 먼, 익숙하지만 낯선 여행이 되었다.
그렇다고 특별할 것 없는 여행이다. 그저 걷고 또 걷는 지루해 보이는 여행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퍽 재밌었다. 조급함과 다급함 없이 가고 싶은 길을 따라 걸었다. 그래서 주어진 길을 마주하며 걸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처음 가보는 길인 양 걸었다. 그래서 재밌었던걸까?
나는 오늘 길을 잃지 않았다. 길을 냈다. 나만의 길을 말이다. 사실 대단한 길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나의 20220208 산책길' 정도일까? 1시간 꽉 채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언젠가 다시 이 길로 걸어봐야겠다. 생각의 변화일까? 심리적 변화일까? 무엇이든 오늘 길을 낸 산책은 두려움도, 걱정도, 허무함도 아니었다. 호기심, 기대, 즐거움, 프런티어의 의미였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길을 잃은 적도 있고, 잘못 들어서 돌아간 적도 있다. 주저하고 서있기도 했다. 가끔은 주저앉아 절망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만의 길을 걸을 준비를 해야 함을 깨닫는다. 누군가의 길이 아니다. 나만의 길이다. 누군가는 걸었을지 모르지만 그 흔적을 따라 새롭게 걷는 나만의 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