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의 알고리즘 너머 내면의 알고리즘에 집중하기
길을 걷다 마주한 생각들은 상념에 가깝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흩어진다. 그럼에도 소홀할 수 없다. 그 모든 마주함이 나이기 때문이다.
걷다 마주한 생각들은 대부분 외부적인 것들이 많다. 오늘 날씨라든지, 독특한 건물이라든지, 풍경이라든지, 사람들로 인해 드는 생각들 말이다. 오늘도 걷다 보니 많은 시각적인 것들에 생각을 빼앗겨 버렸다.
쌀쌀하지만 햇살이 좋은 거리가 좋았다. 보이지 않았던 맛집 같은 허름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양지바른 선정릉도 참 고요해 보였다. 소소한 사람들의 풍경도 괜찮아 보였다. 수없이 마주하고 있는 것들 속에서 나는 반응하고 있었다. 매일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늘 새롭게 다가왔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마주한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 풍경들 속에서 나는 과연 존재하고 있는가? 풍경을 마주하는 것은 나인데, 정작 나는 거기에 없는 것 같았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영화 보는 듯한 기분이다. 영화는 볼 수 있지만 영화 속에 들어갈 수는 없다. 스스로 이방인 같았다.
강남이라는 지역이 주는 풍경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산책하며 마주하는 풍경은 마치 알고리즘처럼 나에게 정해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치밀하고 계획적이어서 웬만해선 알고리즘에서 나올 수 없다. 이 알고리즘은 자꾸 나와 풍경을 비교하게 하고, 대조시킨다. 그리고 그 차이를 선명하게 선 긋는다. 대부분 돈에 관한 것이다. 즐비한 건물들, 아파트들, 상가들, 자동차들 속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보다는 소유하는 것의 의미가 다가왔다. 그리고 소유하고 싶어 지고,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씁쓸했다.
알고리즘을 리셋하자. 촘촘하게 짜인 듯 보이지만 결국 최종 필터는 나다. 나의 내면이다. 중심이다. 심지다. 외부적인 알고리즘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면의 알고리즘으로 외부의 알고리즘을 분별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 내가 산책하는 이유다.
내면의 알고리즘이 분주하기 때문에 나는 외부의 자극에 동요하는 것은 아닐까? 가지고 있던 내면의 알고리즘이 깨어진 것은 아닐까?
다시 내면의 알고리즘에 집중해보자. 내면의 알고리즘을 다시 세워보자.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것이 이기적이고, 외부의 알고리즘에 동화된 모습이 아닌, 나답고 나스러운 목적한 바 다운 모습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