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자 시작한 호기로운 산책
설 연휴 후에 오랜만에 나선 산책이었다. 습관이 무섭다고 매번 가던 길을 걸었다.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가보지 않은 길로만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대로 중심이 아니라 골목길, 가봤던 길이 아니라 가보지 않은 길로 걸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괜찮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산책, 매력적이지 않은가!
처음 들어선 곳은 아파트 단지였다. 아파트들 사이로 난 길들을 따라갔다. 그러다 잘못 길을 들어서서 아파트 공사장을 지나기도 했다. 조용하고 심지어 적막해 보이는 길들이었다. 테헤란로의 활기찬 점심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조용해서 좋기는 했지만 마치 떠들면 안 되는 교무실 같은 분위기랄까? 에어팟을 끼고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다시 대로를 만났다. 익숙한 길이다. 또다시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빌라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역시나 조용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사이로 가볼 수 있는 곳까지 걸었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시계를 자꾸 봤다. 30분이 되면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낯선 길에 대한 어색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위험하지도, 이국적이지도 않았다. 거리가 멀어져서 그랬던 걸까? 심리적인 부담이 느껴졌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신기하게도 낯선 길보다는 거리상 빠른 길을 선택했다. 조금 늦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간이 촉박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물체가 회전하는 힘은 두 가지다. 그것은 원심력과 구심력이다. 이 두 가지 힘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회전할 수 있다. 원심력이 크면 회전 속도가 빨라지다가 그 힘이 더 커지면 회전 궤도를 벗어나기도 한다. 구심력이 크면 회전 속도가 느려지다 결국에는 멈추게 된다.
오늘 산책의 시작은 원심력이 크게 작용했다. 최대한 낯설고 먼 길을 자청했다. 그래서 그 반경을 최대한 넓히고자 했다. 처음에는 의지적으로 의도적으로 더 그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지와 의도가 옅어졌다. 희석되고 결국에는 망각했다.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면 할수록 구심력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구심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가 멀어질수록 크게 다가온 것이다.
익숙했던 것들과 결별하는 산책은 호기로운 허세였던가!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를 자책했다. 지금 나는 구심력에 더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 구심력은 아마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소속되어 있고, 안주하고 있고, 익숙한 것들이다. 언제부턴가 그것이 결코 나의 신앙이나, 철학이나, 소명이나, 비전이 아닌 도구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하고 싶은 내 마음이 투영된 것 같다. 씁쓸했다.
나는 결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그것이 무모한 용기가 되지 않을 전략과 계획이 있는가!
글을 쓰며 다시 묻는다. 치열하고 세밀하게 고민하고, 결단한 바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