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은 멈췄지만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산책을 나셨다. 다시 마주한 풍경은 늘 익숙하고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그 거리를 걸으며 무언가 갇힌 듯한 감정이 들었다. 이 낯선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걸었다. 나는 왜 지금 밖에 있는데 갇혀 있는 것처럼 느꼈을까? 점심시간 안에 내가 갈 수 있는 거리는 강남이라는 그것도 선릉 중심으로 커다란 한 블록에서 두 블록이 전부다. 그리고 제법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거리들은 걸어봤다. 갈 수 있는 거리의 한계를 직면해서일까?
그보다 강남이라는 장소가 주는 외적인 알고리즘 때문 아닐까? 매일 걷는 그 길이 주는 메시지가 계속 나를 밀어붙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무언가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미세먼지 가득한 듯 뿌옇게 느껴졌다. 사실 날씨는 좋았고, 따뜻했는데 말이다.
진짜는 강남이라는 외적 알고리즘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비교하는 내적 알고리즘 때문일 것이다. 이를 분별하고 나니 무언가 도전 정신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 그 알고리즘을 따라 걷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시선과 소리를 걷어내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선과 소리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내면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에어 팟 프로로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최대한 두리번거리지 않고, 익숙한 길을 걸었다. 그 길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길은 그저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 거리는 그저 거리다. 그곳에 무엇이 있든 누가 있든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진짜 걷고 있는 길은 나라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걷는 것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걷는 행위를 통해 나는 우주 너머의 생각이 아닌 지금 나의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간 속에서 나의 길을 걷는다. 때론 과거로 회귀하기도 하지만 결국 돌아와야 할 시간이 있음을 알려준다. 걷는 것은 시간을 고정하는 고정핀과도 같다. 그 시간을 중심으로 과거든, 사람이든, 사건이든 무엇이든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다시 지금 현재로 돌아온다.
테헤란로 그 어디를 걷고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장소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가다듬는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세심하게 살핀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의 길은 나의 것이 아님을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다이소를 들렀다. 그리고 노트를 샀다. 길잡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길잡이가 될 글귀들을 적고 싶었다. 먼저 성경을 적고 싶어졌다. 책상에 앉아 적었다. 그냥 대충 쓰지 않고 정성스레 적었다. 걸음은 멈췄지만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