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빠가 자라는 오늘들들 - 01
뽀글뽀글 파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유치원 다닐 때 사진을 보면 내 머리는 뽀글뽀글했다. 그래서 브로콜리 같이 머리로 유치원을 다녀야 했다. 뽀글뽀글한 머리는 당시 유치원에서도 드문 머리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인사를 하면 늘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앨범 속 유치원 사진들을 보면 나는 늘 돋보였다. 뽀글뽀글한 파마는 비교적 큰 내 머리를 더 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 속 나는 모든 원근법을 무시한 듯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모 작품
고모의 작품이었다. 이제야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셨다. 어머니께 허락도 받지 않고 머리를 파마하셨단다. 아마도 춘천 팔호광장 근처 '동원 미용실'에서였을 것이다. 고모의 절친이 운영하는 나름 유명한 미용실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고모 손에 이끌려 파마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고모는 나를 달래려고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사주셨을 것이다. 찡얼거리는 날 달래면서도 연실 웃으셨을 것이다. 파마한 나를 상상하며 그러셨을 것이다. 인생의 첫 파마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찾아왔다. 뜻하지 않은 파마의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저 '귀엽다.'는 이유였다. 첫 조카라 더 그러셨을 것이다.
시아의 첫 파마
이제 고모는 고모할머니가 되고, 브로콜리 머리의 조카는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시아는 오늘 머리에 첫 셀프 파마를 했다. 파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하지만 말이다. 물론 시아 고모들의 작품이었다. 시아에게는 예쁜 두 고모가 있다. 그 고모들이 시아 머리에 소박한 파마를 해줬다. 그리고 아내는 그런 시아의 사진을 내게 보내줬다. 아련히 그 어린 시절 파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그 파마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때 그 고모의 마음 이, 지금 시아 고모들의 동일한 마음이 말이다.
동원 미용실
오랜만에 춘천을 찾았다. 춘천에서 어린 시절 파마했던 그 미용실을 방문했다. 미용실에는 여전히 연탄난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미용실은 여전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미용실에는 외출을 준비하시는 할머님들이 가득했다. 모두 뽀글 파마를 하기 위해서였다. 입소문으로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고모는 여전히 성황인 이유를 설명하셨다.
"요즘 이렇게 뽀글뽀글하게 파마해주는 곳 없어."
순간 30년여 년 전과 지금의 광경이 겹쳐졌다. 지금의 북적북적한 미용실 속에서 30여 년 전 파마했을 내가 그려졌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어색하게 앉아있을 5~6살 내가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보다 어린 고모가 그려졌다. 앳된 모습으로 점점 브로콜리처럼 변하는 나를 보며 까르르 웃는 고모가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어린 시절 받았던 고모의 사랑은 지금 시아에게도 동일했다. 아니 더 풍성해지고 따뜻해졌다. 시아의 고모들과 고모할머니의 사랑으로 더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다. 그 사랑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