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빠가 자라는 오늘들 - 03
출산휴가와 짧디 짧은 육아 휴직이 끝나고 아내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맞벌이하는 우리 대신 어머니가 시아를 봐주셨다. 어머니는 시아와 금세 친해지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시도 시아를 그냥 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시아와 즐겁게 놀기 위해 주변 다양한 사물과 장난감을 이용하셨다.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시고, 더욱이 찬양을 직접 불러주셨다. 소리에 민감한 시아에 대한 배려다. 신기하게도 시아는 어머니의 노랫소리에 덜 먹던 분유와 이유식도 잘 먹고, 찡얼거림도 덜해졌다.
어머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시아의 행동을 시아의 관점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신다는 것이다. 시아의 관점에서 시아의 니드를 발견하고 충족시켜주시고자 하신다. 그래서 시아는 할머니를 잘 따르는 것 같다.
초보 아빠의 실수
생각해보면 나는 내 관점으로 시아를 이해하려 했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초보 아빠다. 나름 육아 사전이라 자부했지만 아직 멀었다. 나의 지식과 관점으로 시아를 바라보고, 그것이 시아를 위한 것이라 위안했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일찍 시아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러한 생각들은 초보 아빠의 오만이고 자만이다. 그야말로 실수다.
시아의 리듬
여전히 시아는 신비롭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유심히 살펴보니 시아는 나에게 늘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웃고, 울고, 때 부리고, 몸을 비틀고, 돌고래 소리를 내고, 무언가를 응시하고, 손으로 물건을 치고, 움켜쥐고, 입으로 깨물고, 손가락으로 입안에 넣고, 다리를 달달거리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죔죔을 하고, 다양한 톤과 소리로 옹알이를 했다.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성장은 시아만의 고유한 리듬이었다. 그렇다. 시아는 고유한 자기만의 리듬으로 자라고 있다. 시아답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시아답게, 나답게
시아를 키우며 아내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아를 어떻게 키우고 싶냐는 질문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시아를 시아답게 키우고 싶어."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그렇게 키우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내가 먼저 나 다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다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 이상의 가치와 비전에 대한 물음이었다. 가장으로서, 40대를 바라보며, '나 다움'이라는 질문은 철없어 보ㅇ다. 역할, 직함, 소속, 소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순수하고 철없는 민낯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라 치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아를 키우며 나 답게 사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나로 살아갈 때, 시아도 더 나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 '나 다움'은 여전히 숙제다. 작은 힌트 하나는 이렇다.
'나 다움'은 시아에게 여전히 아빠의 소박한 꿈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그 꿈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시아에게 시아의 꿈을 묻기보다, 시아에게 아빠의 꿈을 들려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시아가 자랄 때, 나 또한 성장해야 한다. 시아가 시아 답게 자랄 때, 나 또한 더욱 나 다워져야 한다. 시아가 꿈꿀 때, 나 또한 나만의 꿈을 꿔야 한다.
우리는 서로 양육한다.
시아를 거울삼아 나를 돌아본다. 나의 모난 점들, 좋은 점들을 말이다. 내가 시아를 양육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초보 아빠의 생각은 철저한 무지였다. 시아를 키우며 느낀다. 오히려 양육받고 성장하고 있는 것은 '나'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