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함께 자라는 오늘들 - 01
남의 육아가 궁금해졌다. 아이를 키우며 오늘이 아까운 건 우리 부부만은 아닐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육아로 씨름하는 가정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식사하며 육아에 대해 이야기할 가정을 찾았다. 육아를 소통하며 배우자는 취지였다. 그중 첫 번째 가정은 주변에서 흔치 않은 네 아이 가정이다. 우리는 한 끼의 식사와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솔직히 확신이 서질 않았다. 어른보다 더 많은 아이들 속에서 대화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네 아이 육아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내 아이 한 명도 힘든데, 네 아이 육아라니! 토요일 오후, 초대받은 집으로 가는 내내 질문들을 생각했다. 준비한 질문들보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인터뷰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드디어 집에 도착!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 네 아이들이 반겨주었다.
두 가정이 모였을 뿐인데, 합이 아홉!
이 가족은 아빠, 엄마, 하윤(6), 윤(3), 현(3), 예원(2) 이렇게 여섯 식구다. 이 부부는 아이를 오래 기다렸다. 그래서 찾은 병원에서 생각지 않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불임의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의사의 진단은 부부를 실의에 빠지게 했다. 불임의 가능성을 진단했지만 이미 마음에는 불임이 선고된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부부는 이를 잘 이겨내고 시험관 아기에 성공했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첫째 '하윤'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둘째도 성공했다. 쌍둥이였다. 이 둘은 이란성쌍둥이로 '윤'이와 '현'이다. 그리고 자연임신에 성공한 막내는 시아보다 5개월 먼저 태어난 시아 친구 '예원'이다. 진단은 진단일 뿐이었다. 결국 부부는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이렇게 모이니 합이 아홉이다. 겨우 두 가정이 모였을 뿐인데 말이다.
네 아이 육아, 오늘은 어떠한가?
"한 명일 때는 힘든 줄 몰랐어요."
오늘의 육아는 어떠한가를 물었다. 대답은 '팩 폭(팩트 폭력)'이었다. 마치 네 아이 육아하는 엄마의 포스랄까? 첫째 '하윤'이가 태어났을 때,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하윤이가 그저 사랑스러워 보였고, 무얼 해도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넷이 되자 처음에는 매일이 힘들었다고 했다. 물론 남편이 퇴근 후에는 최선을 다해 육아에 동참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일상은 전쟁이었다. 매일의 육아를 걱정해야 했다. 그런데 그 걱정은 엄마를 더욱 강하게 했다.
네 아이, 축복인가? 고생인가?
"천국과 지옥은 순간에도 오고 가요."
역시나 생명은 독특하고 고유한 리듬으로 자란다. 네 아이들도 저마다의 리듬으로 자라고 있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달랐다. 그래서 엄마는 인터뷰하는 중에도 네 아이들을 신경 써야 했다. 엄마는 아이들의 욕구를 빨리 파악하고 반응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에 감탄했다. 마치 히어로 여전사 같았다. 육아 전쟁에서 평화를 수호하고 승리로 이끄는 여전사랄까? 빠른 상황판단과 명령하달, 그리고 필요를 채우는 재빠른 손놀림은 네 아이 엄마에게 주어진 초능력과도 같았다.
네 아이는 축복이고 행복이지만 순간순간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 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네 아이 육아는 지옥보다 천국의 순간이 훨씬 더 많다고 답했다. 아빠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네 명이라 네 배 더 힘들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네 배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아빠는 네 딸이 그저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아빠 옆, 양 앞, 뒤를 떠나지 않고 재잘재잘 거렸다. 인터뷰 내내 그러했다.
그래서 네 아이 육아, 답 없다?!
엄마, '헌신'으로 답을 찾다.
아빠, '신뢰'로 답을 찾다.
네 아이 육아는 답 없어 보인다. 그러나 네 아이 육아가 일상인 부모에게는 답이 있어야 했다. 네 아이 부모는 서로 다른 답을 찾아갔다. 네 아이를 위한 결이 다른 답이다. 그러나 같은 답이다. 그 답은 결국 네 아이에게로 향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네 아이를 향한 '헌신'으로 답을 찾았다. 네 아이의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사랑은 그녀를 더욱 엄마답게 만들었다. 엄마는 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네 아이는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그 울타리에는 엄마의 헌신이 담겨 있다. 누구보다 깊은 사랑의 마음이 담긴 울타리는 외부의 위험을 차단하여 안락하고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했다. 그 덕에 네 아이는 편안하고 안전했다.
아빠는 네 아이를 위한 '신뢰'로 답을 찾았다. 아빠는 긍정적이면서도 개방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래서 퇴근 후 아빠는 아이들의 '놀이터'를 자처했다. 아빠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다. 자유로움 속에서 아빠는 아이들과의 신뢰를 우선시했다. 그래서인지 네 아이는 아빠의 놀이터 안에서 행복해했다. 그 놀이터에는 아빠의 신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나고 행복한 놀이터에서 네 아이의 꿈은 자라고 있었다.
정답은 없다. 그저 이 부모가 찾은 답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네 아이에게 필사적으로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네 아이 육아는 그렇게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자녀를 향한 사랑은 서로 다른 '헌신'과 '신뢰'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매일의 일상에서 말이다.
네 아이라서 불편한 점은?
엄마, "잠잘 때 한 명이 소외돼요."
아빠, "팔이 아이 수만큼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 아이라서 불편한 점은 수도 없이 많았다. 네 아이라서 불편한 순간이라 말하지 않아도 순간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해한 바와 다른 뜻밖의 답을 듣게 되었다.
"잠잘 때 한 명이 소외돼요."
무슨 뜻인지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잠자기 전,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 곁에서 자고 싶어 한다. 이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아빠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나서는 엄마 품으로 환원되었다. 문제는 엄마 품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잠자리에서 자신의 왼쪽, 오른쪽, 배위까지 내어주어야 했다. 그래도 한 명이 남는다. 네 아이 엄마는 늘 한 명이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이 소외가 생기는 것이다. 요즘은 다행히 첫째 하윤이가 엄마와 떨어져 잠을 잔다고 했다. 그리고 하윤이는 자신을 방에서 자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빠에게도 비슷한 불편함이 있었다.
"팔이 아이 수만큼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빠 혼자 외출할 때 벌어지는 안타까움은 바로 네 아이를 모두 손 잡아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명은 안고, 두 명은 손잡아도 여전히 한 명은 손을 잡을 수 없어서 그렇다. 아빠도 늘 한 명이 마음에 걸렸다. 그 몫은 첫째 하윤이와 쌍둥이들이 번갈아 가면서 담당하고 있었다. 네 명이 아니고는 겪을 수 없는 문제다. 사랑의 크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의 양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자녀 한 명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의 크기는 커졌고, 양은 많아졌다. 그저 그것을 전하고 느끼게 해줄 '품'과 '손'의 문제였다. 결국 부모의 불편함이 아닌 자녀가 겪는 불편함이 부모에게는 큰 고민이었고 문제였다.
네 아이라 특별한 점은?
네 명이라 유모차도 특별하다.
네 아이는 이제 크루(Crew)가 되어간다.
네 아이 부모는 네 아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유모차다. 유모차는 네 아이의 등원 길을 책임지고 있는 중요한 이동수단이다. 네 아이 유모차는 두 명씩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네 명의 아이를 태워야 했기에 가볍고 튼튼했다. 특별 제작한 유모차는 네 아이 부모의 특별함을 드러내기 충분했다. 네 아이를 다 태우면 무거워서 엄마가 유모차를 움직일 수 있을까? 네 아이 부모에게 무거움은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모두 태우고 등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고, 행복이었다.
그리고 네 아이가 자라면서 특별한 것은 바로 '자매애'다. 네 아이는 점점 크루(Crew)가 되어갔다. 어디 가든 네 명이 세트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을 가든, 교회를 가든, 동네 놀이터를 가든 네 자매는 크루로써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늘 앞장서서 동생들을 돌보는 리더 하윤, 눈웃음이 매력적이지만 떼쓰면 인사불성인 현, 또렷한 눈매로 선 머슴아 같지만 요목조목 천생 여자 윤, 크루의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는 예원. 이렇게 네 자매는 어떤 친구보다 특별한 친구가 될 것이다. 자매 크루(Crew)로 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네 아이 육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가능한가?
"불안하지만 충분히 가능해요."
아빠는 네 아이로 행복하지만 가끔은 불안했다. 가장의 무게 때문이다. 사회의 불안성은 아빠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길고 무겁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리고 잠든 네 아이를 보면 마음이 짠해졌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빠는 긍정적이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보다 지금 더 여유롭고 풍족하게 살고 있고 국가의 정책도 다자녀에 대한 혜택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네 아이 육아는 국가 지원이 없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뀐 정권의 육아정책에도 많은 기대도 엿보였다.
아빠는 네 아이 육아가 가능하기 위해 단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그것은 아이에 대해 욕심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욕심을 부리면 사랑이 왜곡된다. 사랑이 왜곡되면 그것은 늘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모로서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네 아이 아빠는 이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네 아이들에게 실천하고 있었다. 참 멋스러웠다. 말로는 쉽지만 행동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대한민국에서 네 아이 육아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에게 육아란?
엄마: 리얼한 일상이다.
아빠: 첫 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잠잘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시아도 잘 시간이 가까워졌는지 눈을 비비며 졸려했다. 집안 정리를 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다. 네 아이 부모로서 육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집안을 정리하며 엄마는 육아를 '리얼한 일상'으로 표현했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전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엄마에게 육아는 무엇으로 비유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리얼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몫은 고스란히 엄마에게 집중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말에서 아내는 공감했다. 그것은 아마도 아빠와 엄마의 육아에 대해 느끼는 온도차일 것이다.
아빠는 육아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육아에 대해 힘들어하는 아내가 안쓰럽기도 했고, 아내가 첫 아이를 육아하던 그때를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육아에 대해 첫 마음을 기억하는 것으로 답했다. 아빠에게 첫 마음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육아가 힘들어 보이거나 고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할 것이라 낙관했다. 그 마음이야말로 이 가정을 지키는 굳건한 기둥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육아에 대해 늘 초심을 지켰다. 초심으로 네 아이를 대하고자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었다.
결국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그저 부모만의 일이 아니었다. 양육은 아이와 부모에게 모두 필요하다. 아빠는 엄마와 아이를, 엄마는 아빠와 아이를, 아이는 아빠와 엄마를 양육하는 것이다. 구성원들마다 양육의 모습은 다르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돌봄이 필요하고, 아빠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필요하고, 엄마는 아이가 품에서 잠든 천사 같은 표정이 필요하다. 이렇듯 육아는 서로 양육하는 것이다.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