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검진 비박 예약

#1 시아가 자라는 오늘들 - 08

by ㅇㅅㅅㅇ

봄이 시작될 무렵, 시아의 첫 번째 영유아 검진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냥 하는 연례행사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부담되고 걱정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다. 시아 영유아 검진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막장 드라마 같았다. 시아에게 했던 작은 실수나 행동들이 모두 가시가 되었다. 말 그대로 잡생각이다. 그래도 처음 가볍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마음이 무거웠다. 초보 아빠라서 그런가 보다.



영유아 검진


영유아 검진은 푹풍성장하는 아기의 성장발달을 점검하는 취지다. 아기는 우선 외형적인 체크가 중요하다. 간단한 체크만으로도 아기의 장애와 질환을 예방하거나 적절히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 6세 미만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6개월에 1번씩 7차 검진을 받는다. 성장, 발달, 안전, 영양, 청각, 시각, 수면 구강 등을 검진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유아 검진은 아주 간단한 체크만 하고 끝난다. 그만큼 검진할 것도 없기는 하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세심하게 봐주지 않는다는 거다.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그랬다. 그렇다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는 없었다.



예약 도전


우리는 영유아 검진을 받기 위해 소아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찾던 소아과를 발견했다. 친절하고 세심한 소아과, 우리 시아를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의사 선생님을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예약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매달 25일에 선착순 예약을 한다. 인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예약에 성공하면 다음 달 검진 날짜를 정할 수 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영유아 검진 예약을 하기 위해 시아와 함께 아침 일찍 소아과로 향했다. 나름 일찍이라 생각했는데 소아과에 도착해보니 이미 예약 마감이란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이가 없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예약 마감되었데... 여기 장난 아니야. 첫 번째 예약한 사람은 전날 11시에 와서 문 앞에서 비박했데."

사실이었다. 예약을 하기 위해서는 비박을 해야 했다. 소아과 문 앞에서 말이다. 매월 특히 예약일이 토요일인 경우는 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렇게 예약을 실패하고 나서 무언가 약이 올랐다. 오기가 생겼다. 다음 달에는 꼭 성공하겠노라 결심했다. 이건 그저 시아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저 객기였는지 모른다.



소아과 앞에서의 비박


만반의 준비를 했다. 철두철미하게 말이다. 비박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겼다. 따뜻한 옷, 이불, 바닥 깔개 그리고 긴 밤을 함께 해줄 넉넉한 영화가 담긴 맥북. 11시 즈음부터 준비한 것들을 챙겼다. 이리저리 준비하다 보니 12시 즈음이 되어 출발했다. 가는 길에 헛웃음이 나왔다. 자만했던 것 같다. 적어도 다섯 번째 안에 예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아과에 도착했는데 깜짝 놀랐다. 5명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비박하고 있었다. 헛헛했다. 소아과 앞에는 무심한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내일 예약은 48명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을 세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만화책을 들고, 어떤 사람은 릴랙스 체어와 침상을 들고, 어떤 사람은 친구끼리, 부부끼리,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비박하고 있었다. 대충 세본 결과, 나는 22번째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먼저 자리를 펴고 영역을 표시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체온 유지와 포만감에 잠들게 해줄 라면과 음료수를 사 왔다. 맛있었다. 무언가 뿌듯했다. 시아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옆 사람들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 동질감이 느껴졌다.

"원래 이렇게 예약하기 힘든가 봐요."

옆 사람들이 말했다.

"저는 두 번째 영유아 검진인데, 여기 원래 그래요."

"그래도 여기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영유아 검진을 잘 봐주세요."

처음에는 모두 화기애애했지만 긴 밤은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새벽녘에는 아무리 영화를 보고, 잠을 청하려 해도 불편했고 그래서 불면했다.



드디어 예약 성공


시간이 지나자 지난달 나와 같이, 늦게 와서 허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러는 몇 시에 왔냐며 묻기도 했다. 12시에 왔다고 하니 놀라며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22번째로 온 시아 아빠는 나름 뿌듯하기도 했지만 그 헛헛함을 알기에 미안하기도 했다.

긴 새벽은 지났고 갑자기 사람들은 순서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간호사가 순서대로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다. 드디어 나는 22번이 찍힌 번호표를 받았다. 밤새 기다리던 병원에 들어가 예약을 했다. 간호사는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어느 날짜에 예약하시겠어요?"

원하는 날짜를 말하고는 예약에 성공했다.

소아과를 나오며 아내에게 전화했다.

"성공했어. 22번째로 원하는 날짜에 예약했어. 집에 갈게."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말했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생했어. 얼른 집에 와서 푹 쉬어. 여보."

그날 나는 오전 내내 꿀잠을 잤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모두 '부모'라는 이름으로 소아과 앞에서 비박했다. 하나같이 자신의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유난 떨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다. 그저 조금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좋은 부모는 단 한 번의 계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 계기가 엄청나고 대단할지라도 말이다. 계기는 일상에서 소소하게 계속되어야 한다. 조금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노력들이 좋은 부모로 안내해줄 것이라 믿는다. 결국 부모는 아이와 함께 자란다.

나도 시아와 함께 자란다. 조금 더 좋은 부모로 성장하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오늘의 일상, 수많은 이름들 속에서 '아빠'라는 이름으로 시아와 마주하는 짧은 시간을 통해 그렇게 되어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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