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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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에서 쭈욱 자란 도시 사람이다. 마을보다는 도시를 무조건 선택하겠지만, 내겐 도시라고 모두 같은 도시가 아니다. 신도시에서 자란 나는 극구 대도시를 고집한다. 그리고 강남보다는 강북. 작은 마을에서 자란 남편이 도시에서 벗어나 좀 더 한적한 곳으로 이사하자고 할 때마다 나는 절대 반대하였다. 한데, 도시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서? 비도시(도시가 아닌 지역)가 도시랑 무엇이 다른가?
이번 캐나다 동부 여행은 내가 도시의 어떤 점 때문에 도시를 고집하는지를 발견한 계기가 되었다.
북미는 내게 익숙한 유럽과 한국과는 전혀 다른 규모였다. 장을 보려고 해도 차로 한 시간을 우전 해서 나가야 했다. 장을 보고 돌아오면 약 2시간 반에서 3시간이 지나있다. 공항을 가는 데에도 편도 4시간. 우리를 픽업하러 오신 시아버지는 그날 왕복 8시간을 운전하셨다. 캐나다 어느 숙소에서 머무는 동안 답답하여 산책하러 가고 싶어 나갔더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픽업트럭들이 쌩쌩 달리는 큰 도로만 있어 걷기 10분 막혀버렸다. 너무 답답하니 큰 도로라도 걷겠다고 투정 부리다가 남편이 너무 위험하다고 극구 말려 결국에는 투닥거리며 숙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땅이 넓은 건 알겠는데, 왜 꼭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널찍널찍하게 토지를 개발해서 자동차 의존적으로 꼭 만들어야 했는지, 괜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이동이 철저하게 차에 의존한 비도시권 생활을 2주 한 후 도착한 토론토는 내게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토론토로 들어오면서 렌트한 차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 반납해 버렸다. 도시에 들어서자 드디어 나는 대중교통과 두 다리로 카페도, 생필품으로 사러도, 산책하러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말 그대로 날아갈 것 같았다. 두 다리로 도로를 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가뿐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도와 두 다리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드디어 독립된 사람 구실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닌, 내 손으로 뭐든지 사러 갈 수 있다니 (이렇게 이동권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토론토에 들어서자마자 들어간 카페에서 발견한 소규모 사업체가 만든,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상품들은 또 한 번 도시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하였다. 비도시권을 여행하며, 대형 슈퍼마켓에서 선택권이 많지 않은 채, 대형 회사들이 만든 주류 상품들만 보다가 밴쿠버에 들어서니 작은 회사에서 만드는 콤부차부터 독립 양조장의 크라프트 비어, 한국, 일본, 멕시코, 이탈리아 음식 등등 다양한 취향이 뒤섞여 있다. 남편은 런던에서부터 먹고 싶다던 냉면을 코리아 타운에서 나는 그동안 먹고 싶었던 라멘집을 찾아 직접 걸어가 먹었다. 2주 동안 캐나다 음식만 먹었던 나의 위도 간장 맛에 환호성을 질렀다. 동시에 한국에서 남해를 방문했을 때, 외식 선택지가 많지 않아, 남해에서의 여정이 며칠이 지났을 때 빵을 꼭 주기적으로 먹어야 하는 남편이 남해에서 빵을 절실히 찾아 헤매었던 때가 생각나기도 했다. 비도시에서는 중소 규모의 다양한 선택지를 찾기 어려웠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고 지역마다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겠다.)
게다가 토론토에 들어서니, 나는 더 이상 눈에 띄는 동양인 또한 아니었다. 도시를 오가는 많은 인파 중 익명의 행인인 '지나가는 행인 1'이 되어 인파 속으로 섞이며 피로감이 확 줄어드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공간에 소속감을 느끼며 안전하고 평안함을 느껴졌다. 이민의 나라, 캐나다였음에도 비도시권에서는 나는 여전히 눈에 띄는 동양인이었고, 이것이 그동안 꽤나 피로감을 주었던 듯하다.
도시가 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가? 이 주제로 회사에서 프로젝트와 콘퍼런스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왔던 여러 의견 중, 미국에서 온 동성애자인 동료는 도시에서는 익명성을 보장받아, 마을 단위에서는 느낄 수 없던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그래서 비로소 본인 자신이 될 수 있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이야기할 때, 새로운 도시를 만들 때에 일자리와 교통 접근성만 강조하는 일을 계속 반복할까?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연 일자리와 교통만으로는 이번엔 몇 년짜리 도시가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노령화되고 비어 가는 과거의 산업도시들을 보면서 자꾸 의문이 생긴다. 특히나 개발할 땅과 사용할 재료와 인구가 줄어가고 산업은 급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도시 만들기의 공식은 왜 바뀌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