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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Apr 03. 2023

코리안 트레디셔널 재즈와 새별오름 풍물 클럽

제주들불축제 (3)


  따뜻한 햇살 아래 새별오름을 배경으로 "행복한 미래도시 OO동", "해변의 낭만과 사랑이 담긴 OO동" 같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제주 어느 동네에 붙여도 말이 되는 문구를 단 천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제주시 읍면동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천막이었다.


  마을별로 경쟁하는 토너먼트 대회(집줄놓기, 듬돌들기, 희망달집 만들기 등)가 많았기에 이 천막들은 선수 대기실 겸 뒤풀이 장소가 되어 아쉬운 성토와 서로를 향한 격려가 오가기도 했다.


  저녁이 되자 이 천막들은 마을별 풍물놀이 중앙 관제실이 되었다. 낮에 거나하게 취해 있던 분들이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치복(풍물놀이를 할 때 입는 옷)을 갖춰 입고 점잖게 다음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될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많았다. 천막 안에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옷장이라도 있었던 것일까(오름, 풍물, 그리고 옷장) 어디서 자꾸 나타나는지 풍물패가 'ctrl C + ctrl V'를 한 것 마냥 무한증식하기 시작했다.



  무려 ‘제주화합 전도 풍물 대행진‘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제주도 전역의 풍물패가 다 모인 듯했다.


  J스러움이라 한다면 단언컨대 이런 모습, 그러니까 마을끼리 견제하고 경쟁하다가도 제주도 전체의 일이라고 하면 순식간에 모이는 단결력이랄까 양면성이 아닐까 생각하며 풍물팀의 준비 과정을 지켜봤다.





  준비를 위해 모인 풍물팀은 저마다 합을 맞추는 중이었고 꽹과리와 장구 소리를 반주삼아 ‘내 나이가 어때서’ 같은 대중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그중 한 풍물팀이 청춘 남녀의 사랑에 대한 노래를 부르며 풍물놀이 합을 맞추고 있었는데 신명 나는 비트에 흥을 주체하지 못한 관광객 무리의 일부가 풍물팀으로 뛰어들어 몸을 흔들어재끼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풍물 클럽’ 개장이었다.


  신들린 듯한 꽹과리 소리와 장구 연주자의 발재간, 그리고 그 가락(?)에 몸을 맡긴 사람들의 헤드뱅잉과 트위스트는 마치 클럽을 연상케 했다. 재즈 바도, 트렌디한 펍이나 화려한 조명이 날 감싸는 EDM클럽도 아닌 새별 오름 벌판에서 열린 풍물 클럽은 뜨겁고 짧게 막을 내렸다.


  연습을 끝낸 풍물패는 행진을 시작했다. 행렬이 길다 보니, 앞에서 리듬을 이끄는 꽹과리가 멀어지자 뒤쪽 행렬 사람들의 박자가 조금씩 느려졌다. 그대로 계속 느려졌다면 아마도 돌림노래… 아니, 돌림 풍물이 되었겠지만 박자는 맞는 듯 맞지 않게 조금씩 느렸고 밀고 당기는 박자와 호흡, 화합에 이것이 바로 코리안 트레디셔널 재즈가 아닐까 생각했다.





  제주도 내의 지역감정은 꽤나 유명하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도시 인프라 및 지역 격차로 인한 갈등을 겪어 왔다. 제주시에 위치한 공항 근처로 빠르게 개발이 이루어진 반면 서귀포시의 개발은 보수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남북간의 갈등뿐 아니라 한라산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지역의 갈등도 심했다. 동촌(조천읍, 구좌읍 지역)은 토지가 척박해 밭농사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지 못해 겨울에도 물질을 해야 했다. 악조건이 만든 동촌 사람들의 억척스러움 때문에 서촌(애월읍, 한림읍 지역) 사람들은 동촌 사람들을 꺼렸다고.


  같은 동촌이면서도 더 동쪽에 위치한 구좌읍 사람들을 향해 조천읍 사람들이 '동읫놈'(동촌 놈)이라고 부르며 푸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눈 내리는 한겨울에도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동촌의 척박한 환경이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동서 갈등이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들면서도, 지금와서는 이렇듯 작은 계기(그렇다. 답은 제주화합 전도 풍물 대행진이다.)만 있다면 결국 뭉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묘하게 조금씩 엇나가면서도 차마 멀어져 버리지는 않는 리듬처럼 오래전부터 얽히고설켜 제주를 지탱해 온 사람들의 마음이 오늘에 와서 풍물소리와 함께 쏟아져내렸다.






참고문헌: 김길웅, "동촌 가마귀 몹쓴다", 제주의소리, 2018.10.27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Amp.html?idxno=211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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