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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Apr 07. 2023

불이 없는 들불축제란

제주들불축제(4)

  정부의 산불경보가 '경계' 단계로 상향되며 들불축제에 불을 활용한 활동 일체가 취소되었다. 건조한 날씨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산불이 발생하는 시기인 것은 물론이고, 저탄소를 지향하는 시대에 오름 한 면을 태우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가 생기던 차였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축제장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축제의 규모만큼이나 먹거리 천막도 많았고 즐길거리도 많았던 덕분이다.


  준비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관람객들이 한 번쯤 “참여해 볼까?” 하며 몸을 풀었던 것은 다름 아닌 새별오름 오르기다. 벌판에 솟아 있는 새별오름은 아래에서 보면 꽤나 웅장해 보이기 때문에 첫날에는 오름을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애써 외면했다.(‘나까지 가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하지만 어린아이며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새별오름으로 향해 새별오름 꼭대기에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는 통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새별오름 한 번 올라봐야지.’


  황금빛 억새가 물결치는 가운데 꼭대기에 서니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뷰티풀!”을 외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옆에 두고 휴지 대신 마스크로 인중을 닦아내는 모습을 들키지 않게 감동받아 콧물을 훔치는 척했다.(이 마스크는 다시 쓰지 않았으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외국인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새별오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 와중에 새별오름 보행길에는 “식생 보존을 위해 출입 금지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 기분이 묘했다. 원래대로라면 억새 물결은 오늘 밤 불타고 말았을 텐데. 식물이 움직일 수 있었다면, 인간의 보행길이 아닌 그 바깥쪽을 향해 도망가라고 써 붙여 놓아야 했던 게 아닐까 싶어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탄소 배출과 동물권 문제(새별오름을 불태우며 미처 피하지 못한 동식물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로 인해 들불축제 존폐 논란이 있어 왔기에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해하는 행위, 인간의 편의를 위해 환경을 해치는 행위는 금지되어야 마땅하다. 문제는 그 기준이다.


  전 인류가 갑자기 원시시대로 돌아가 살 게 아니라면, 우리가 살면서 하는 모든 행위는 탄소 배출 그 자체다.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도,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도, 프로모션 이메일을 메일함에 쌓아두는 것조차.


 환경에 가장 큰 악영향을 주는 행동부터 서서히 줄여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들불축제처럼 눈에 띄는 행사는 앞으로 더 많은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주최 측에서는 갑작스러운 취소가 달갑지 않겠지만 오히려 앞으로 있을 변화에 앞장설 수 있는 기회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새별오름에서 내려온 후 심란해진 마음을 다독여 준 것은 싸이버거였다. 어둑해진 저녁, 오름 불놓기 행사 전의 축하 공연이었다가 얼떨결에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되어 버린 공연에 싸이 이미테이션 가수 ‘싸이버거'가 등장했다. 싸이버거는 가수 싸이의 유머와 자기 관리(남다른 풍채)를 쏙 빼닮아 분위기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고, 사람들은 싸이버거가 불러주는 싸이의 노래들을 찰떡같이 소화해 내며 함께 뛰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공연 막바지에 신해철의 '그대에게'를 부른 그는 벅차올라 외쳤다.


  “오늘 행사에는 불이 없지만 여러분이 모두 불꽃입니다. 우리가 함께한다면 뜨거운 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곤 관람객이 모두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새별오름을 등지도록 해 마치 새별오름에서 빛이 발하는 것 같은 감동 연출까지 이끌어냈다.


  그래 진짜 불이 아니면 어떤가, 사람들의 마음속 불꽃이라는데. 아드레날린이 샘솟게 하는 싸이의 음악에, 자꾸만 우리를 뛰게 하는 싸이버거의 땀(싸이버거의 땀이라니 살면서 이런 단어를 쓰게 될 줄이야.) 때문인지 이 연출에 큰 감동을 받아버렸다.





  축제가 끝난 후 ’ 제주들불축제‘가 존폐 기로에 섰다는 기사가 나왔다. 낭비된 소방 인력, 불놓기를 진행했을 시 불탔을 수많은 식생, 오염되었을 지하수와 대기질. 어떤 것도 쉽게 반박하기 힘들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왔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없애고 뿌리 뽑는 것은 언제나 가장 쉽고 무책임한 해결방법이다. 일제강점기 때 집단 놀이를 금지하며 전통을 가진 축제와 놀이의 명맥이 끊겼다. 우리나라에 찍어내는 양산형 축제만 많고 역사 깊은 축제는 없다고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역사를 쌓아 나가고 있는 축제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축제장 입구를 지나며 지난 축제의 연혁이 정리되어 있던 것을 기억한다. 몇 년 전 프로그램 중에는 돼지몰이와 말싸움이 있었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동물권에 반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모두 폐지되었다.


  이런 유연성을 가진 축제라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든 논의를 통해 변화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름 전체에 불을 놓는 대신 횃불행진과 희망 달집 태우기만 진행하는 건 어떨까?


  원래 불놓기 기간에는 제주 전역에 들불이 난 것 같다고 했으니 바닥에 커다란 제주도 모양의 그림을 그린 후 그 위에서 제주도민과 관광객이 함께 희망달집을 여러 개 만들어 태우는 것도 전통을 잇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축제에 참여하며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불의 힘을 느끼기도 했지만, 잊혀 가는 전통으로 만들어진 대회에 타오르는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른 사람의 노래로 땀을 뻘뻘 흘리며 분위기를 띄우는 이미테이션 가수와 그에 호응하듯 뜨겁게 뛰어놀던 사람들을 보며, 불이 없는 축제의 불은 정말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축제로 남는 한, 들불 없는 들불 축제라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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