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청년들'
친구들이 제주도에 놀러 왔다. 장롱면허 둘에 무면허 하나. 운전을 못하는 우리는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저녁거리를 포장해 택시를 불러 숙소에 왔다. 마농통닭을 배 터지게 먹고 숨 한 번 쉴 때마다 "진짜 배불러"를 연발하던 우리는 후식으로 애플망고까지 해치우고 소파에 늘어졌다.
TV가 없는 숙소는 도파민 디톡스를 원하는 현대인에게 딱이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트는 대신 음악을 틀었다. 우리끼리 꽂혀 있던 바밍타이거의 <부리부리>를 틀자 누워있던 셋이 모두 일어나 팔을 양쪽으로 뻗고 엉덩이를 흔들며 부리부리를 추기 시작했다.
<부리부리>는 바밍타이거의 곡으로 "부리부리~"하는 후렴구에 맞춰 팔을 뻗고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대는 춤이 함께한다. DMZ 페스티벌에서 몇 천명의 관객이 부리부리를 추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은 우리는 <부리부리>가 흘러나오면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는 부리부리 키즈가 되어 있었다.
부리부리와 함께 저녁으로 먹은 통닭을 소화시킨 뒤 다시 소파에 누웠다. 자연스럽게 DMZ 피스트레인에서 인상 깊게 본 무대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글렌체크 공연이 제일 좋았어. 음악에 취해 들뜬 관객들을 보고 감격한 것처럼 보였는데 나도 울컥하더라고."
"그러고 보니 2015년 안산 락페스티벌에도 글렌체크를 봤었는데, 오랫동안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헉. 그게 벌써 9년 전이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입생들이 직장인이 되는 동안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일 년에도 수 십 개씩 열렸을 것이고 수많은 신예 밴드가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꾸준히 새로운 곡을 내고 활동해 온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시간을 돌려 2015년 전후로 페스티벌 무대에 활동한 밴드들에 관한 추억풀이가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우리가 뛰놀던 음악에 관한 추억풀이었다. 데이브레이크의 <좋다>, 소란의 <가을목이>, 술탄오브더디스코의 <오리엔탈 디스코 특급> 같은 음악을 틀고 춤을 추거나 9와 숫자들의 <높은 마을>, 짙은의 <해바라기>를 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만의 '제1회 제주 추억팔이 인디 락 페스티벌'을 열었다.
그 사이 나는 비밀스럽게 스마트폰 검색창에 '청년들'을 입력했다. 2014년 앨범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그들은 1년에 한 번씩 간간이 페이스북에 소식을 올리다 2019년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소식이 끊겨버렸다.
2014년, '페스티벌'이라 명명된 행사를 처음 가 본 나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흔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함께 간 친구들도 마찬가지라서 서로 어색하게 웃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잔디밭을 거닐다가 신들린 듯 공연을 즐기는 신예 밴드 '청년들'과 그의 팬들을 보았다. 낮 공연이라 30명도 채 안 되는 관객이 모여 있었는데, 에너지는 몇백 명이 모인 것보다 강렬했다. 분위기를 주도하던 건 단 2명의 열성팬이었다.
'청년들'이 이름처럼 청량하게 웃으며 관객들을 훑어보곤 <Cali>의 전주를 연주하자 열성팬 2명은 환희에 찬 비명을 지르며 콩콩 뛰었다. 그들에게서 순수하게 넘쳐흐르는 기쁨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그 열정이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킨 걸까. 어느 순간 우리도 음악에 맞춰 팔을 뻗고 뛰고 있었다.
<108> 음악이 흘러나오자 두 명의 열성팬들은 노래의 하이라이트에 맞춰 가운데로 뛰어들어가 서로 몸을 부딪치는 '슬램'이나 모르는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빙글빙글 도는 '기차놀이'를 주도했다. 내 인생 처음이자 가장 작은 규모의 슬램이었고, 가장 즐거웠던 공연이었다.
그 후로 청년들의 노래를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났다. 음악에 즐거운 기억이 섞이니 자꾸 손이 갔다. 소식이 끊겨서 궁금했었는데, 2015년경 해체소식을 간접적으로 알렸고 2016년에는 베이스를 치던 멤버가 제대를 했다는 소식을 올리며 "괜찮은 일자리 추천받습니다."는 말을 덧붙였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 그 한 줄이 퍽 슬펐다. 내게 페스티벌의 짜릿함을 알려준 첫 락스타 청년들이 지금은 각자 괜찮은 일자리를 찾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공연과 예술문화에 미쳐 사는 친구 H는 "기회가 될 때 많이 가야 돼"라고 말했다. 언제 밴드가 해체하거나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말을 실천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H를 오늘도 부지런히 따라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