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엄 Jan 12. 2023

글의 실어증

'글을 써야지'에서 '어떤 글이든 쓰기'까지.

정리되지 않은 말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오늘 하루 느낀 것,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새롭게 배운 것, 혼자 생각하다 깨달은 것. 모두 단편적인 조각이라 말로 잇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속으로 담아두는 생각과 말의 조각이 많아졌다.


일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게 있다면 뭐예요? 어떤 점이 제일 어려워요? 롤모델이 누구에요?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턱 막힌다. 생각해 본 적 없거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답을 하는 건 집 어딘가에서 본 기억은 나지만 정확한 위치는 모르는 가위와 실, 단추를 제각기 찾아 지금 당장 꿰매보라는 것처럼 어렵다.


어려운 질문에 대해 대충 얼버무리고 나면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대답한 그대로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없는 말로 얼버무린 정도의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두고두고 아쉽다.





정리된 말을 꺼내놓을 수 있는 도구는 글인데, 일을 하면서 글을 썼다면 좋았겠지만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자기계발이라는 명목으로 수업을 듣거나 자격증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약속을 잡아 노느라 여전히 말들은 질서를 모르고 여기저기 찌그러져 있었다.


그때는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도 아무것도 써지지 않았다. 일을 하며 생기는 일들을 쓰자니 인사이트가 매일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회사를 드러내고 글을 쓰자니 혹시나 민감한 정보를 유출하게 되는 건 아닐까 혼자 법무팀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글을 내려달라고 말하는 상상을 하며 타자기 위 손가락을 단속했다. 내 이야기를 쓰자니 한마디 글을 쓸 때조차 자기 검열을 하느라 걸러진 글이 얼마 없었다. 걸러진 글로는 숭늉도 못 끓였다.


그래서 기다렸다.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까지. 입을 닫은 채 속으로만 되뇌고 정리하던 생각들이 좁은 어항을 견디지 못하고 어디로든 가고 싶다고 새어 나올 때까지.


올해 목표를 친구들과 공유했다. 무슨 자격증 따기, 얼마 모으기, 어떤 직무로 옮겨가기. 구체적인 목표 사이 내 목표는 '완벽주의 버리기'였다. 일단 어떤 말이든 쓰고 싶어 안달 난 지경까지는 왔지만, 계속해서 나를 단속하고 검열해서는 아무것도 쓸 수 없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말의 실어증은 뇌 손상이나 극심한 스트레스 등 원인이 다양하지만 글의 실어증의 원인은 단 하나, 완벽주의가 아닐까. 글이니 실문증()이라고 해야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의 마음은 자두가 아니라 조각작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