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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Dec 26. 2022

감자와 친해지기

제주 농사 공동체에서 진행하는 식문화 워크숍 참여기



감자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말해보시오.


라는 물음에 나는 몇 개나 답할 수 있을까? 울퉁불퉁한 감자의 모양 외에 감자의 싹에 독성이 있다는 것, 찌고 구울 수 있다는 것, 튀기면 맛있다는 것 정도? 이와 같은 물음에 답하기 어려운 건 다른 작물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나는 당근에 대해서도, 버섯과 연근과 토마토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

식감이 특이했던 구운감자




우리 모두에게는 무언가를 짓고 길러내는 농부의 힘이 있다.

제주에 내려와 가장 인상 깊게 지켜본 프로젝트가 있다면 '프로젝트 그룹 짓다'다. 하루의 반은 농사를, 반은 자신의 일(예술활동, 프리랜서 일 등)을 하며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청년 공동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해외에나 있는 줄 알았던 이런 커뮤니티가 한국에도 있었다니!’ 놀랐고, 그 밑바탕에 깔린 생각이 ‘우리 모두에게는 무언가를 짓고 길러내는 농부의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짓다의 인스타그램(@projectgroupjidda) 계정을 팔로우한 후, 짓다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호시탐탐 지켜보다 ‘식문화 워크숍’을 진행한다는 게시글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신청했다. 워크숍은 프로젝트 그룹 짓다가 오픈한 공간 ‘소농로드’에서 진행되었다. 뒤로는 넓게 펼쳐진 밭뿐, 길가에 간판 없이 여기가 맞나 긴가민가 한 곳이 있다면 그곳이 소농로드다. 낮은 돌담 뒤로 바로 펼쳐진 마당과 건물의 큰 창 덕분에 누구나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

프로젝트그룹 짓다의 오프라인 공간 '소농로드'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내가 신청한 것은 ‘감자’를 주제로 한 식문화 워크숍. 짓다에서 재배한 감자를 주제로 농부의 채소 도슨트와 자연주의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자리였다. 채소 도슨트는 감자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세요? 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감자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묶어 생각하곤 하는 고구마와 감자는 사실 각각 뿌리식물과 줄기식물로  뿌리부터(?) 다르다. 감자는 생명력이 아주 강해 밭에 뿌리가 조금만 남아 있어도 싹을 틔우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영역을 넓히다 전염병에라도 걸리면 순식간에 전체가 옮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11월에는 작물을 먹어치우는 벌레들을 조심해야 하는데, 배추와   많은 작물들을  시기 수확하며 벌레들을 털어내기에  곳이 없어진 벌레들이 감자밭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감자에도 여러 종이 있는데, 감자칩이나 튀김으로 만들기 좋은 종은 따로 있으며 수미칩은 수미감자로 만들어 수미칩이다. 제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감자 이모작이 가능한 곳이다. 2~3월에 심어 여름에 수확하고, 7월쯤 다시 심어 12 중순에서 1월에 수확이 가능하다. 여름감자보다는 추운 겨울을 견뎌낸 겨울감자가  맛있다고 한다.

감자 워크숍에서 서빙해주신 첫 음식 감자스프




냉장고에 방치된 작물의 시체를 치운 기억


우리는 흔히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우리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무지의 영역에 음식에 쓰이는 작물의 생산 시기, 작물을 기를 때 주의해야 할 것, 올바른 보관법 등은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공장화된 생산 단계 속에 정제된 작물들을 먹으며 나는 내가 무엇을 먹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발생된 플라스틱 쓰레기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버려지는 음식물의 출처는 궁금했던 적이 없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운송 과정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되는 해외산 작물보다 국내산을 찾고,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못난이 작물을 선호하게 될 텐데. 작물이 나에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와 올바른 보관법을 알았다면 냉장고에 그냥 두다 썩어 버려지는 작물이 적었을지도.


나의 냉장고에서 바싹 마른 미라가 되어 생을 마감한 오이들과 검게 머리가 센 양파들이 아른거린다. 그들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너의 무지가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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