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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Dec 30. 2022

당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썩은 동아줄이다

썩은 동아줄에 휘둘렸던 과거의 나에게

동생이 친구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장에서 1년간 일을 했다. 처음에는 다 좋다고 했다. 사람들도 좋고, 잘 대해 주신다고. 능력 있는 분이라고. 그러다 점차 말이 없어졌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알고 보니 그분은 오로지 본인의 직감으로 사업을 해 오던 사람이었고, 사업이 잘 안 될 때는 월급을 주지 않아 동생은 단기 알바를 찾아다니며 버텨야 했다는 걸. 어쩌다 운이 좋아 사업이 몇 배 매출을 내며 잘 되었을 때는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것 하나 없이 본인과 본인 아들(동생의 친구)의 차를 럭셔리한 것으로 바꿔 타고 동생에게 자랑을 하곤 했다.


동생은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 것도 아니어서 편할 때 쓰고 제 발로 나오게 했다. 친구는 대표의 아들이기에 일은 안 하면서도 꽤 있어 보이는 직함을 달고 있었고, 그 경력을 인정받아 큰 회사로 이직했다고 했다. 그가 가장 처음 한 것은 내 동생에게 카톡을 보낸 것이었다. 회사 연봉은 어떻고 복지가 어떻고, 정말 좋다고. 재수 없는 자식




동생이 왜 그런 사람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당장 힘이 없고, 불안정하고, 간절할 때 조금이라도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면 참 높고 멋있어 보인다.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초년생 입장에서는 객관적으로 생각이 안 될 뿐더러 어떻게든 길을 찾아 나가고 싶은 마음에 이 동아줄을 붙잡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사람은 인맥이 많아 보이네', '어린 나이에 벌써 자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대단한 사람인가 봐', '말하는 걸 보니 능력 있어 보여!' 등. 취업을 앞둔 대학생때 했던 생각들, 해봤자 또래인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나고 보면 지나치게 타인을 부풀려 보며 한 말이었다. 그 생각으로 무례한 말을 듣고도 속없는 사람처럼 웃고 누가 봐도 무례한 행동임에도 꾹 눌러 참은 날들이 있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생각하고 또 부단히 노력하면서.


언제 어떻게 기회가 올지 모르니 언제나 예의를 차려 사람들을 대하고, 많이 질문하고 많이 듣다 보면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은 오직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사람이라는 점 뿐이었다.


정말 배울 점이 많고 진정으로 '높은' 사람이란 자신의 위치에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면서도 주위를 둘러볼 줄 알고, 사람들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회사를 다니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았다.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유로 당신을 얕보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절대 좋은 인연이 아니며 당신을 이끌어줄 동아줄은 더더욱 아니다.





김영하 작가는 인간관계를 고민하는 취준생들이나 불안정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관계를 잘 못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 힘이 약해서 당하는 일"이라고 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잘못하는 걸 거의 못 봤으며 무언가를 잘못해서 당하는 일이 아니라고. 지금은 힘이 약하고 만만하니까 (당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좀 낫다고.

 

20대 시절의 작가는 자신에게 원고료를 떼먹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그런다더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힘이 없던 시절, 어리고 불안정하고 간절했던 시절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남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는 사람이 당신의 인사만 받지 않을 때, 상사 앞에서는 그리 쾌활하고 성격 좋아 보이던 사람이 당신에게 납득하기 힘든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낼 때.


높이 있으면 멀리 볼 수는 있겠지만, 발밑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힘들다. 사회 계급에서 위치상 아래에 있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의 면면을 똑바로 볼 수 있다. 때로는 그들이 풍기는 악취를 맡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마음만큼은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 사람은 약자에게 이렇게 대하는 사람이구나, 나중에 나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내가 힘이 없어서 당하는 일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되, 마음은 그 날선 말과 행동으로부터 멀어지면 된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라도 동아줄인 것처럼 잡고 있다면 그건 당신의 마음을 곪게 만들 뿐이다. 당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썩은 동아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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