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며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표를 받아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수강신청을 통해 시간표를 짜야했을 때, 과장 좀 보태서 고대 그리스 시대의 극장 같은 위압감을 주는 대강의실에서 발표를 하는 선배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 '대학스러운' 요소들에 위축되었다.
특히나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 낯설었던 대학교 1학년 1학기, 우연히 듣게 된 화학 교양 강의는 나에게 남은 대학생활에 있어서 큰 자신감과 용기를 주었던 수업이다. 당시 나는 한 발 늦게 수강신청을 한 덕분에 남은 강의들을 주워 담아야 했다. 화학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는 것들(커피나 술, 설탕 등)을 화학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수업 설명에 호기심이 동했다. '모름지기 교양 수업은 낯선 것들에 대한 지식을 쌓는 시간이지!'라는 나름의 지론도 한몫했다.
주차별로 커피, 와인과 맥주, 콜레스테롤, 피와 물, 광합성 등 한 가지 수업 주제에 대한 교수님의 강의가 있었고 해당 주제가 어떤 화학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다루었다. 화학 교양 수업이었지만 인문학 수업으로 느껴질 정도로 역사 및 사회 현상과 밀접하게 설명해 주셔서 어렵지 않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을 한숨짓게 만들었던 것은 매주 내주신 A4 한 장짜리 과제물이었다. 그 주차에 들은 수업 주제와 관련 있는 사회 현상을 한 가지 적고 이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진 후 자신의 생각을 적어 내야 했는데, 이는 K대학생의 주적인 '벼락치기 정신에 어긋나는 잦은 과제 요구', 'ctrl C+ctrl V가 불가능한 자신의 생각 적기'에 해당했다.
K대학생들이 취약한 자즌과제바이러스
하지만 나는 그 과제를 하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특히 주제와 관련된 사회 현상을 찾아내고 질문을 던지는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세상에 관심 많고 호기심이 많아 질문을 던지기 좋아하는 내 습성과 잘 맞았던 덕분이다.
'마약'이라는 주제에 대해 나는 '마약을 하면 흔히 환상을 본다고 하는데 마약을 한 채로 만든 음악에 대해 우리는 허상을 듣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질문했고 '맥주와 와인' 주제에 대해 '맥주는 서민스러운 느낌이, 와인은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질문했다. 다소 엉뚱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내 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교수님이라는 평가자가 있었지만, 성적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나에게 그는 잘 보여야 할 대상보다는 내 글을 읽어주는 유일한 팬이자 독자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5월 경 수업 중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불러 찾은 후 "1학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깊고 참신하며 글을 잘 쓴다"라고 해 주셨는데, 그 기억 덕분에 남은 대학생활 기간 동안 내 생각을 표현하고 적는 데 있어서 큰 용기를 얻었다.
지금까지도 몇 개의 주제는 내가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났는데, 뭐 잘 썼으니 칭찬해 주셨겠지 싶었다. 그런데 며칠 전 메일함 정리를 하다가 그 당시 쓴 과제물을 발견했는데... 부끄러웠다. 글은 단락을 나누지 않고 통으로 써서 읽기 불편했고, 나름대로 적은 내 생각의 근거는 빈약했다. 또,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이런 내용을 썼지?' 싶을 정도로 글에서 철없음과 나이브함이 드러났다. 글 속에서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해맑게 흔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다만 순수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과 그 당시의 내가 듣던 철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나름 조합해 이어나가는 논리, 글에서 드러나는 이상주의적인 나이브함조차 투박하고 서툴지만 에너지가 넘쳤다. 그 당시 나는 평가받기 위해 쓰지 않았다. 새로운 것에 대해 배우는 게 행복했고, 호기심이 갈 곳을 잃는 대신 어딘가에 풀어내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글을 읽어 줄 단 한 명의 독자(교수님 잘 지내시죠?)가 있음에 신이 났다.
지금 내가 쓰는 글도 부족함이 많다. 당장 수개월 전에 쓴 글 중에서도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워 조용히 '발행 취소'를 누른 글이 몇 개 있다. 몇 년이 지나면 차마 읽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워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즐기며 글을 썼던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지지 않게 나도 스스로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오로지 내면의 즐거움과 충만함을 위해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