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 기간 동안 내 여행세포도 유명을 달리한 모양이었다. 스스럼없이 외국인에게 손짓발짓하며 도움을 청하고, 보답으로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평소보다 더 힘껏 웃어주던 예전의 나는 어디로 가고, 낯선 여행지에서 어딘가 쫄아있고 안절부절못하는 내가 있었다.
나 홀로 떠난 첫 일본여행의 하루는 오후 4시가 되도록 그렇게 어딘가 찜찜하고 어색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의 시간은 더디게 가는 법, 가끔 뜬금없이 웃긴 일본스런 요소들(가슴 모양의 과자나 바니보이 코스튬)을 발견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기도 했지만 낯선 곳에서 어정쩡하게 방황하고 있는 상황은 그마저도 끝을 흐리며 스스로에게 어색하게 웃어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예...?
자기 자신과 어색할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걸까. 언어가 안 통하니 카페만 가도 주문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진땀을 빼야 했기 때문에 사람이 많다 싶으면 앞에서 서성거리다 들어가지 못하고 여유 있게 나를 받아줄 만한 곳만 찾아다녔다.
쇼핑을 더 하려고 하다가 진이 다 빠져서 집었던 물건도 내려놓고 숙소에 와서 욕조에 몸을 담갔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체험이 저녁 7시에 예정되어 있어 그전에 휴식을 취해 두려고 했다. 낮시간의 힘들고 어색했던 시간 때문에 기대반 걱정반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후쿠오카의 나이트라이프 체험
예약한 체험은 "후쿠오카의 나이트라이프를 만나보세요"라는 이름으로, 현지인 호스트와 함께 일본식 포장마차인 야타이를 몇 곳 방문하며 음식을 먹고 즐길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게스트는 나와 또 다른 한국인 한 명. 체험 진행 언어가 영어였기 때문에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어색함을 풀어갔다. 호스트는 한국에 와 본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고 배운 간단한 한국말과 욕도 선보였다. 역시 외국인이 하는 서툰 우리나라 욕은 듣는 이를 웃게 하거나 적어도 흐뭇한 미소를 띠게 하는 효과가 있어 아이스브레이킹에 좋다.
덴진역 근처의 야타이
추운 거리를 약간 걷다 들어선 야타이에는 마침 3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추운 겨울이라 비닐을 쳐 따뜻한 공기가 머물도록 해 두었는데, 안에서는 얼마나 복작복작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음식이 끓여지고 있는지 들어서자마자 훈훈한 공기에 마음이 풀렸다.
한국에서도 포장마차를 종종 즐기기 때문에 호들갑을 떨 생각은 없지만 더 넓은 공간을 점유하며 일행끼리 테이블을 사용하는 한국의 포장마차와 달리 바 형식으로 둘러앉는 일본의 야타이는 더 내밀한 느낌을 주었다. 다른 일행의 대화가 들리는 것은 당연하고, 그들이 사장님과 나누는 대화까지 저항 없이 귀에 들어왔다.
당연히 우리 일행에 외국인 두 명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그곳의 모두가 눈치챘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또 주문하며 한참을 헤매고 핸드폰만 내려다보며 식사를 했을게 분명했다. 가끔 사장님이 말이라도 걸어주면 "오이시소-"하며 브로큰 재패니즈로 답을 했겠지('오이시'는 '맛있다'는 뜻, '오이시소'는 '맛있겠다'는 뜻으로 음식을 먹기 전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일본여행 내내 이 둘을 혼용했다). 아니, 어쩌면 이 얇은 비닐 천막 한 장 너머의 내밀함을 견디지 못하고 들어가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야키토리(닭꼬치), 돈코츠 라멘, 어묵과 무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현지인 호스트는 어떤 음식을 맛보고 싶은지 이야기를 듣고 음식을 추천해 주었고, 타투가 있으면 온천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본 문화나 후쿠오카에서만 야키토리와 함께 생 양배추가 나온다는 사실 등 지역 음식의 독특한 점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음식은 모두 맛있었지만 특히 여기서 먹은 돈코츠 라멘은 내가 이번 후쿠오카 여행을 하며 맛본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다.
심지어 알고 보니 야타이 사장님과 호스트가 어릴 적 살던 곳이 같은 동네라 서로 겹치는 지인이 있어 안부를 묻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겉돌며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지만, 호스트와 함께 있으면 낯선 도시 속 친근한 모습이 엿보였고 나는 이방인이 아니라 내밀한 일본 문화 깊은 곳까지 초대를 받아 온 손님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에어비앤비 체험을 좋아했는지 다시 깨달았다. 체험 호스트는 여행자들의 손을 붙들고 그 지역 문화 내밀한 곳으로 한 발 한 발 끌고 들어간다. 괜찮다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들리지 않던 말들을 번역에 내 귀에 들려준다. 아! 이런 느낌이었지. 여행세포가 긴 잠을 끝내고 몸을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