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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Dec 27. 2022

끝이 없는것처럼 퇴사를 준비하다

영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오늘은 영원 속에서 거듭 존재한다. 절망스럽게도 영원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시간의 범위 안에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적어도 나에게는) '지속'의 개념, '지속'에 대한 동경이 필요하다. 죽음을 앞두고 허무에 잠겨 있던 알렉산더도 세 번의 하루를 환상으로 겪은 후 '영원'을 자각하게 된 것 아닐까. 끝에 이르러, 시한부인 그에게 내일은 없음이 한결 명확해졌는데도 오히려 이런 말을 한다. 

"내일을 위해 계획을 세울 거야."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 흐름(2020), 72p.




회사를 떠나며 무척이나 힘들었다. 김영하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가 수많은 감정들을 '짜증'이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묶어버리는 것처럼 아쉬움과 서운함, 공허함과 서글픔, 불안과 혼란이 뒤섞인 마음은 끝내 '우울'이라는 형태로 뭉뚱그려졌다. 


일을 하다가도 자주 울컥해서 간신히 마우스를 잡고 흐려진 시야로 일을 했다.(재택근무라 어찌나 다행인지!) 육아휴직 대체 자리에 1년 계약직으로 들어왔기에 끝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끝이 없는 사람처럼 열정을 불태우며 일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기에 끝을 실감했을 때에는 갈 곳 없는 서운함과 공허함이 몰려왔다.


마지막 한 달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마음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때 마침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준비하는 선배가 있어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자책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퇴사가 가까워지면 그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기에 현재 하던 일을 정리하는 일에는 마음이 덜 가게 되는게 당연하다. '회사에서 그동안 이만큼 많이 받았는데(돈이든 경험이든) 마지막이라고 이렇게 하기가 싫어지다니 내가 참 별로군'이라고 자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그러지 마시기를. 


다만 남은시간이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에게는 끝이지만 남아있을 사람들에게는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다. 그러니 전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내가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당시 나는 내게 주어진 일 A 대신 다른 일 B를 하는게 회사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분야에서 몇 년간 일해 온 상사에 비해 내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간은 짧았기에 혹시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쫄보의식과 남은 시간 주어진 일이나 잘 끝내고 정리하자는 안온한 마음의 소리가 더 지배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효과가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마지막으로 하고 떠나는 것은 나에게 가장 괴로운 일이었다.


선배는 이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회사를 다니며 스스로 생각했을 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은 한 적이 없다고. 그 일보다 다른 일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되면 보고서를 만들어 상사를 설득시켰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가 남았건 그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래야 남은 동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평소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는 변명이었다. 만약 내가 퇴사하지 않고 더 남아서 일을 했다면 진행했을 일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다. 


조언을 듣고 실제 내가 생각하던 부분에 대해 데이터를 찾아 정리해 한 장짜리 보고서를 만들어 회의 시간에 공유했다. 이야기를 들은 상사는 내 생각을 무척이나 반겨주시곤 예상은 했지만 데이터를 보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A보다 B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에 따라 주셨다. 


프로젝트에 얼마 참여하지 않은 내가 마지막까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었다. '소리없는 아우성',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처럼 역설같지만 결국 우리를 필요한 곳으로 데려다 주는 마법같은 말을 이번에 하나 더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끝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 끝을 잘 낼 수 있다."는 것. 영원의 가치는 하루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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