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졸업생의 다소 개인적인 항변
제주에서의 첫 스쿠버 다이빙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깊은 곳 까지 잠수해 본 강렬한 경험이 되었다. 수면에서부터 연결된 밧줄을 잡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아쿠아리움이 아닌 곳에서 내 눈앞을 아른거리는 물고기를 처음으로 보았고, 날숨이 공기방울이 되어 수면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내가 내쉬는 매 숨을 느꼈다. 바닷속의 공기는 춥고 외로웠지만 고요하고 신비로웠다.
철학을 배우며 연습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 깊이 잠수해보는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낭독하는 수업이 있었다. 단어는 어렵고 문장은 복잡해서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학기 내내 읽은 것은 책의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나의 문장을 이해하고, 그 다음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앞선 문장을 곱씹으며 문장과 문장 사이 숨은 논리를 찾아내고, 마침내 하나의 문단을 읽어냈을 때에는 잠들어있던 뇌에 읽어낸 문단만큼의 길이 나고 그 이상의 새로운 세상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칸트를 읽어내며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높은 지성에 탄복하며 그랬으며, 노자와 장자의 난해한 문장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랬다.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보며 쳇바퀴 돌듯 돌아가던 단순한 뇌의 회로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무수히 많은 다른 길을 만들었다.
일을 하면서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잘 서지 않았을 때, 존경하는 상사에게 내 장점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내 장점 중 하나로 '깊이 고민하며 일하는 점'을 이야기 해 주었다. 언제나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고민해보는 것,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점은 철학을 배우며 많은 길을 낸 덕분이 아닐까.
밧줄을 생명줄마냥 붙잡고 천천히 움직이다 결국 강사님의 손에 붙들려 상승했다. 스쿠버다이빙을 더 배우면 나도 물 속에서 헤엄쳐 나아갈 수 있을까? 보고싶었던 큰 바다거북을 만날 수 있을지도.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저 제주바다를 헤엄쳐 나아가고 있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회복탄력성이 될 것이라고 한다. 위기가 닥쳤을 때 빠르게 전략을 수정하거나, 실패를 겪어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어야 하고 애초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불안정성을 견디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들고 불안정성을 '향해' 간다는 것은 대단히 주체적인 일이다.
수입이 없는 취준생 기간동안 경제적인 불안정, 불편한 상황을 견뎌야 하는 심리적인 불안정 등 살면서 크고작은 불안정한 상황들을 맞닥뜨렸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딘가 메모해 둔 철학자들의 삶의 태도와 글귀가 뜬금없이 튀어나와 위안을 주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걱정해라'는 공자님 말씀으로 불안한 취준생 시절 해야 할 눈앞의 일에 집중하며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눈앞의 이익에 흔들릴 때마다 내가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는 대부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지만, 철학을 공부하며 삶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를 접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의 말은 때로는 오리발, 때로는 물안경, 때로는 뭍으로 이어진 밧줄이 되어 내 삶을 이끌어주었다. 내 회복탄력성에 대한 공로를 철학에 돌리는 이유다.
그럴듯하게 글을 썼지만 철학이 만병 통치약이 아니며 이 모든 것을 내가 혼자 깨달은 건 아니다. 나에겐 존경스러운 부모님과 배울 점이 많은 리더, 좋은 선배들이 있었고 그들이 나에게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 다만 조언을 듣고 실제로 행하기까지 스스로 깊이 이해하고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면, 철학 수업을 들었던 것이 그 바탕이 되어 준 듯 하다.
그러나 철학의 단점이 있다면, 뜬구름 잡는 생각과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 교양 강의를 들으며 한 교수님으로부터 철학과 학생들의 주장은 이상적이고 추상적이지만 실제적이지 못하다는 피드백을 듣고 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다른 과에 비해 현실적인 문제를 도외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나는 개인적으로 철학 교수가 되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진 게 아니라면, 철학을 배우며 복수전공을 꼭 하기를 추천한다. 철학과를 지망하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고민하는 많은 학생들이 위 글을 근거로 여러분의 주장을 관철시켜 주체적인 결정을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