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한 환대의 힘
제주에 내려온 지 어느덧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끔 서울에 올라가면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제주를 떠올리는 내 모습을 보고 조금씩 실감하는 중이다. '아. 나에게 제3의 고향이 생겼구나.'
제1의 고향은 서울, 제2의 고향은 여수다. 부모님이 6년 정도 여수에 거주하신 적이 있는데,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방학 때마다 여수에 내려가 몇 주씩 머무르곤 했다. 여수에 가면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나를 피곤하게 했던 것들로부터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국내에서는 서울에서만 쭉 살아와서 그런지 몇 달 이상 체류한 도시는 자동적으로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진 지역이 되었다. 여수에서 지낸 기간은 총 합쳐 세 달이 넘어가기에, 여수에서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나 혼자 여수는 나에게 제2의 고향이라고 떠들며 애정해 왔다.
그런 나에게 6개월은 실로 많은 기간이었다. 기간이 아니더라도, 제주를 가깝게 느끼게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제주가 이주청년에게 보여준 태도가 그중 하나다.
정보가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청년 지원 정책 알림톡을 신청하고, 청년들을 위한 정보 공유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어느 날 받은 알림톡에서 '이주청년 웰컴키트'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주한 지 1년 이내의 청년들이 대상이라는 말에, '나를 위한 거다!' 싶은 생각으로 신청을 하고 웰컴키드 지급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받게 된 웰컴키트는 생각보다 더 알찼다. 바다든 오름이든 열심히 놀러 다닐 생각에 부풀어 있을 이주청년들을 위한 폴딩카트와 해변가에서 쓸 비치타올, 생활에 꼭 필요한 수건과 함께 청년들이 정착하는데 필요한 많은 정보가 담긴 책자가 들어있었다.
'와... 이게 다 뭐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처 장만하지 못했던 것들로 구성된 웰컴키트에 생각 이상으로 감동받아버렸다. 원래 선물은 내 돈 주고 사긴 아깝고, 있으면 좋겠는데... 싶은 것들로 줘야 한다고 했다. 웰컴키트에 담긴 담당 공무원의 세심한 배려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 웰컴키트를 기획할 때 사업을 함께 운영할 청년 기획단을 모집했다고 한다. 청년들의 목소리가 직접 담길 수 있도록 진행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웰컴키트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엽서 크기의 종이에 적힌 메시지다.
"꽃 향기가 가득한 봄엔, 함께하는 나들이의 따스함과
빛이 부서지는 여름엔, 시원한 물놀이의 즐거움과
바람이 불어 오는 가을엔, 따뜻했으면 하는 바람과
차가운 겨울에는, 수레에 귤이 가득 담기는 온정의 마음을 담아
제주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다시 봐도 명문인 이 글을 읽으며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아직 해변가로 나들이를 갈 만큼 날이 풀리지 않았기에 폴딩카트와 비치타올은 아직 빛을 보지 못했지만, 책자를 살펴보며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기도 했고 수건은 벌써 몇 번을 빨아 썼는지 모를 정도로 사랑받는 중이다.
청년들이 줄고 고령화가 가속되어 지방이 소멸하는 추세라고 한다. 지자체에서는 청년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여러 지원정책과 워케이션,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유일하게 청년인구가 늘고 있던 제주조차, 요즘에는 청년들이 일거리를 찾아 다시 도시로 떠나고 있다고.
안다. 지방 소멸을 막는 것은 경제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 일자리가 없으면 왔던 청년들도 다시 도시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 나 역시 제주에서의 삶이 좋긴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일이 육지로 올라올 것을 요구한다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마음도 언제나 한편에 있다.
다만, 설령 다시 올라가게 되더라도 제주도가 따뜻한 말로 나를 환대해 주었던 기억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서울에 올라갔다가도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거나 상황이 변해 다시 지방에 갈 수 있게 된다면 단연컨대 제주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될 터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주민들에게 그렇겠지.
세심한 환대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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