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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Jan 29. 2023

덕담이 전하는 마음

설 명절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오랜만에 소란스럽다. 서로의 근황을 묻는 소리, 맛있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 소리가 TV소리, 설거지 소리와 함께 집안을 꽉 채운다. 몸빼바지를 입고 안마의자에 몸을 뉘인 외삼촌도, 인형놀이를 하던 사촌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짐짓 모양을 내는 행사가 있다면 '세배'다.


세배를 하고, 덕담을 듣는 시간. 건강과 행복과 성공을 바라는 어른들의 마음이야 모두 같겠지만 말의 형태와 모양은 지문만큼이나 다르다.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오로지 건강만을 바라는 사람, 돈을 넘어서 더 큰 뜻을 이루기를 바라는 사람. 한마디 말에 찍힌 주름지고 굴곡진 지문들이 모여 앉은 젊은 마음에 한 번씩 지장을 찍는다.  





자리를 파하고 떠날 때까지 두 개의 지장이 떠나지 않고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지장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는 대가가 있다"는 지장.


한 아버지의 두 자녀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당한' 두 자녀를 둔 아버지는 평소에 전하고 싶던 마음을 담아 지장을 누른다. 그 마음은 마주한 눈길에도 실려 있어 모르고 지나칠 수가 없다.


"미래에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하기 싫은 일의 대부분을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즐기며 일하게 될 거라고 해요. 그런 일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요."


교수님의 막간을 이용한 동기부여 연설과, 일자리 박람회와, 스타 강사의 강연 대미에서 수없이 들은 내용이지만 힘껏 누른 듯 선명한 지장이 찍혀 있어 이번만큼은 마음에 자국을 낸다.




또 다른 아버지의 자녀는 유망한 학과에 진학해 대기업에 입사했다. 부모의 뜻에 따라 걷기 시작한 길이 본인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 듯 넌지시 부모에게 말을 흘리지만 현실적인 이유는 언제나 그를 설득해 내는 데 성공한다.


평생 장사와 사업을 해 온 아버지의 현실감각은 자녀가 잡으려 하는 구름의 높이를 냉철하게 계산해 낸다. 그 또한 모두에게, 하지만 특히 자녀가 있는 곳을 향해 한 마디 지장을 찍는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도 대가가 있어요. 그건 자기가 감당해 내는 거고, 어떤 길을 가든 선택은 자기가 하고 책임도 본인이 지는 거예요."


먼저 사회에 진입한 냉철한 선배와, 노량진 공무원 시험 강사의 수업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의 지문은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찍힌 듯 선명하게 남는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듯한 두 개의 지문은 겹쳐져 하나의 모양을 이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지만, 여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좋아하는 일이 금전적인 불안정성을 수반할 경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현실적인 어려움에 시달릴 수 있다. 이는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에도 책임이 따른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하고 싶지 않은 일에 할애하며 느낄 공허함과, 몇 십 년이 될지 모르는 아득히 남은 시간을 하루하루 견디는 괴로움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어떤 삶을 살게 되든 인생에 정답은 없겠지만, 그날 서로를 향해 무수히 찍힌 지문 중 사랑이 아닌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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