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올린 <트루먼 쇼> - 19대 대선 일자리 공약 단상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 분)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지만, 비극은 그것이 그 자신에게만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트루먼은 하루 24시간 생방송되는 리얼리티 쇼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은 서른이 된 그를 탄생부터 일거수일투족을 보아왔다.
그는 결혼을 했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익사를 목격하고 물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남자다.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임의로 구성한 이야기다. 그러나, 어느 날 대학 때 이상형의 여인으로부터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거짓 삶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에 빠지고, 그 여인이 머무는 피지섬(Fiji)으로 가려한다. 전문 배우에 불과한 그의 아내와 친구들은 그를 번번이 제지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굳히고 바다를 건너려 한다. 바다를 건너려 하는 그를 보고, 방송 연출자는 그의 물 공포증을 이용해 제지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영화 끝무렵, 트루먼은 용기를 내어 오직 그에게만 바다였던 물이 가득 찬 실내 공간을 가로질러 세트장 벽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는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 그 밖은 진짜 세상이다.
우리 사회는 안정을 권해왔다. 기본적으로 조직은 개인이 집단에 귀속되기를 원한다.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실한 부속품을 필요로 했던 산업화 시대는 그것이 심했다. 그 직장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선배들은 젊음을 다듬고 조련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열정과 창조적 파괴를 격려하는 것을 머뭇거리거나 통제하려 한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좋게 보면 후배들의 안정적 삶(?) - 조직에 귀속해서는 이제 더 이상 얻을 수만은 없는 - 을 원하는 마음, 그 반대로는 후배들의 성장에 위협을 느껴서, 그것도 아니면 유교 혹은 군대 문화의 영향 등 여러 가지 설이 많겠지만 말이다.
한국 문화, 군대문화가 어느 정도 몸에 밴 필자는, 지난 10여 년간의 국제기구 업무를 통해 직장 내 문화에 관해 마음 깊은 곳에서 긴 변혁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아시아인 (특히, 한국인 상사/선배에게) 특유의 선배 공경의 정신을 기저에 깔고 소위 ‘튀지 않게’ 일을 하다가는, 글로벌 기업 문화에서는 소극적인 사람이거나 혹은 아예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해, 겸양과 겸손이 미덕인 한국적인 문화는, 작은 일을 해도 크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몸에 밴 미국식 문화와 부딪혔을 때,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해를 낳기도 한다. 문화가 뒤섞인 글로벌 컨택스트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실력과 능력이다. 실력이 있다면 나이나 경륜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이 된다. 이 말을 뒤집게 되면, 스스로 사고하고 일거리를 만드는 연습을 하지 않고, 시키는 일만 하거나, 주어진 일을 (자신의 직무적합도를 상세하게 따져보지 않고) 수행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급격히 변화하는 미래의 시장은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비싼 인생 수업료를 내야 했다.
산업화 시대를 겪었던 한국사회는 강력한 카리스마형 리더십과 조직문화가 반드시 필요했다. 고도의 산업화, 현재의 윤택한 삶이 이를 바탕으로 이룩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가 원하는 것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위계질서보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유연한 환경이다. 가파른 경제성장률은 이미 옛말이고 (2017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2.5%로 예측), 이러한 상황에서는 산업화형 인재보다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인재가 필요하다. 물론 유연한 환경은, 실적 중심의 책임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다시 말하면, 이제 시장은 개방됐고, 무조건적 권위의 격은 무너지고 있고, 실력 중심주의의 시대가 왔다. 2016년 9월 10일에 S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은밀하게 과감하게: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는 밀레니얼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 이 세대가 기성세대의 관료 문화를 시스템을 바라보는 관점이, '선배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비대해진 낡은 체계'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미 대기업 신입사원 100명 중 27명이 몇 년 안에 퇴사를 한다. 이들은 다른 기업문화를 찾아 이직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다른 삶을 찾거나, 스타트업에 참여하고 있다. 변화하는 밀레니얼 세대, 그중의 핵심인재를 잡기 원한 기업은 그 스스로 먼저 변화해야 할 것이다. (참고 영상 클릭)
사회혁신 분야의 거물로 꼽히는 빌 드레이튼 아쇼카(Ashoka) 창립자는 변화의 시대를 사는 개인의 역할에 대해 이런 통찰을 남겼다.
"변화의 시대에서는 규칙은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간다. 근면하게 규칙을 따르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본의는 아닐지라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조직을 파괴할 것이다. (In a world of escalating change, the rules cover less and less. Anyone who tries to be a good person by diligently following the rules will, inevitably if unintentionally, hurt people and disrupt groups.)"
- 빌 드레이튼, 아쇼카
혁신을 꿈꾸는 기업의 리더이든, 정부의 관료이든 한 번 곱씹어볼 문장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이클 주커버그가 한국사회에 태어났으면, 고시를 봐서 공무원이 되었거나,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 전체가 어린 시절 시험을 잘 보면 "평생직장"을 보장하는 형태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인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숙하고 진화한다. 20대의 주커버그는 창의적인 발상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그의 아이디어를 높이 산 기성세대와 교류하며 성장했다. 투자자들은 그의 아이디어를 봤지, 나이나 경륜을 본 것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서 중퇴를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의 시스템이 그런 혁신적인 인재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아이폰과 페이스북이 없는 삶을 생각하기 어렵다.
대선을 앞에 두고 표를 겨냥한 일자리 창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혁신 사회, 미래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몇 가지 일자리가 생겨서, 몇 명의 젊은이들이 채용하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인재들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시대정신 (그것이 4차 산업 혁명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에 맞는 토양을 길러주는 일이다.
트루먼이 세트장 바깥으로 나가려고 할 때, 여러 사람들이 그를 교묘하게 막으려고 했던 것처럼, 사실 남들이 - 실제로 그게 국가라도 - 일방적으로 권하는 안정에는 우리의 장밋빛 미래가 있지 않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내가 지금 여기 왜 서 있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조직이 권하는 안정은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일자리를 늘리면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단견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정말 그런 특정 일자리에서 일하는 청년을 길러내야 미래로 갈 수 있을 지 숙고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혁신이다. 이럴 때일수록 새 판을 설계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고기를 직접 잡아주는 것은 하수다, 고기 잡는 법, 나아가 풍부한 어장을 위해 생태계 자체에 신경 쓰는 것이 상수다.
관점을 바꿔, 구직자인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두려움을 뒤로하고 자신의 삶의 목표와 가치에 맞는 '업'을 충분히 숙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취업이 당장 중요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장단점과 삶의 방향을 충분히 숙고하지 않는 채 주어진 곳에 순응하게 되면, 스스로 만드는 주도적 세상은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트루먼처럼 세트 밖의 세상, 진짜 세상을 맞이 하기 위해 다시 분투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리얼월드 (Real World)를 찾아가는 과정도 감사한 인생의 일부기도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