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다. 어려운 질문이다. 나 자신을 아는 것,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사실 이것보다 중요한 인생의 질문은 없을 텐데, 불혹을 앞둘 때까지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지내왔다. (이 글을 읽는 혹자 중에, 만약 당신이 대체 누구인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면, 여기서부터 굳이 이 글을 더 읽을 필요는 없겠다.) 나를 정확하게 아는 것, 특히 사회에서, 일터에서 나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쓰임새를 알아 정확하게 포지셔닝(positioning)하는 것, 그것은 그렇게 지독히도 힘든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밥 먹고 사느라". 그리고 그 붙잡은 기회들에 매여 사느라, 우리는 보통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스스로 무언가에 미쳐있지 않고서는 평생의 업(業)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무언가에 미쳐있다는 극단적인 표현은, 사실 굉장히 자연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즉, 어떤 일에 몰입(immersion) 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내 몸이 그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다.
작고한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그는 저서 <깊은 인생>의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개인의 자연스러운 바람과 하는 일이 일치될 때, 더 정확히는 그 일에 마음과 깊이 통하는 깊은 의미가 부여될 때, 그는 "시(詩)처럼 산다"라고 했다. 시처럼 사는 인생, 아름다운 인생이다. 쉽게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책의 서문이다.
"시처럼 살고 싶다. 나도 깊은 인생을 살고 싶다. 무겁고 진지한 삶이 아니라 바람처럼 자유롭고, 그 바람결 위의 새처럼 가벼운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 내면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깊은 기쁨, 그것으로 충만한 자의 발걸음은 얼마나 가벼울지. 어느 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사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문득 의미를 발견하여 말할 수 없는 헌신으로 열중하고, 평범한 한 여인이 문득 하던 일을 중단하고 내면의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하는 느닷없는 전환은 아름답다. 그것이 삶을 시처럼 사는 것이다......"
- <깊은 인생(구본형, 휴머니스트 2011)> 중
웹 파일 (web file) 공유 분야에 혁신적인 새 바람을 몰고 온, 드롭박스(Dropbox)의 창업자 드류 하우스턴은 2013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졸업 축사에서, 자신이 아는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개들이 (즐겁게 전력질주를 하며) 테니스 공을 물어오는 그 상태'에 있다고 했다. 즉, 자신만의 테니스공, 자신을 전력 질주할 수 있게 하고,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자문했다. 나는 시처럼 살고 있는가? 테니스 공에 초점을 맞춰 힘든지도 모르고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가. 안타깝게도 대답의 시계추는 조금 더 부정적인 쪽에 가까웠다. 그것은 아마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게 되면서, 일이 주는 부수적인 열매들에 초점을 맞추느라 본질적인 의미를 숙고하는 노력을 좀 게을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하루의 작은 일들과, 마음 깊은 곳의 울림, 삶의 이유 등이 저 큰 바다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시(詩)적이 경험을 아직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나를, 우리를 시처럼 살게 하는가, 반대로 무엇이 그렇지 못하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저 멀리 던져진 테니스 공을 쫓기 전에 주저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을 찾기 위해 짧을 지도, 길 지도 모르는 마음의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그래서 여기에, 마음의 하프 타임 (half time)을 선언한다. 인생의 락커룸에 들어가 마음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그 생각의 여행은 이 곳에 기록할 것이며, 접근 가능한 타인의 기록이나 기억에 의존할 수도, 혹은 누구를 직접 만나보거나, 어디에 갈 수도 있겠다. 어떻게 끝날지 전혀 알 수 없는 이 여정을 통해, 평범한 필자에게도 '느닷없는' 전환이 일어나기를 설레는,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마음으로 감히 바라본다. 시처럼 살고 싶다. 나도 깊은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