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 21, 제826호 기고]
지난 (2010년) 8월7일, 해가 뉘엿뉘엿 저물던 밤 9시께. 스위스 제네바의 레만 호수 근처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매년 여름 제네바 축제(Fêtesde Genève) 때마다 열리는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혹자는 불꽃놀이가“예술의 가장 완전한 형태”라고 했는데, 그 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호숫가 주변은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찼다.유난히 중동·아랍 지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 축제에서는 검은 천을 쓴 여성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그 여성들이 두른 검은 천이 우리가 이슬람권 여성에 대해 흔히 말하는 ‘히잡’이다.
무슬림 여성을 위한 히잡 착용 금지?
이슬람권 여성들은 문화적 정체성, 종교적 성실성, 도덕적 전통,법적 의무 등의 이유로 검은 천을 사용한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각기 ‘히잡’(머리카락은 가리고 얼굴은 공개), ‘니캅’(얼굴을 모두가림), ‘부르카’(전신을 가림) 등을 착용한다. 문제는 이러한 전통을 고수하는 이슬람권 인구 상당수가 유럽과 미주로 이주하면서마찰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 프랑스는 특정 장소에서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법적으로 금지했고,캐나다에서는 이와 관련된 법이 의회에 계류 중이다. 이슬람 여성들의 히잡 착용 문제가단순히 종교와 표현의 자유 문제를 넘어, 국가의 영향력을 규정하는 문제, 게다가 여성의 권리와 평등 문제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2004년 “모든 종류의 종교적 상징물을 공공 교육시설에서 착용할수 없다”고 발표하면서, 다만 종교적 상징물이라 함은 이슬람의 히잡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십자가,유대교의 다윗의 별(Star of David), 시크교의 터번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덧붙였다. 이 법으로 인해 많은 이슬람 문화권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히잡을 벗지 않으면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해야 할 처지가 됐다.
캐나다 퀘벡주의 ‘법안 94’(Bill 94)는 이와조금 다르다. 이 법은 “여성들이 만약 공공 분야에서 일하고 싶거나 정부 관료와 일을 할 경우 얼굴 가리개를벗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수업을 받거나보건소 같은 공공기관을 이용할 때 여성은 니캅을 벗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이로니컬한 점은 퀘벡주에서는 이법을 여성을 위한 조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슬람 여성들은 강압적인 이유에서 억지로 니캅을 착용한것이지, 개인적인 선택은 아니라고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슬람을 부정해 살해 위협을 받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네덜란드 출신 변호사 아야 알리는 토론 프로그램에나와 “이슬람은 유럽의 종교가 아니다”라며 이 문제를 “유럽의 가치와 이슬람 가치의 충돌”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정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반면 이슬람 출신 스위스 학자 타리크 라마단은 “프랑스에서 2천 명 미만의 여성이 니캅이나 히잡을 착용한다. 따라서 문제를 이렇게 확대할 필요가 없다”며“이제 이슬람은 유럽의 종교이고, 사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반박했다.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으로 번진 이 사안에 대해 국제인권법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2조와 5조 a항은 ‘여성의 차별을 조장하는관습은 폐기되어야’ 하고, ‘국가는 여성이 전형적인 의무(stereotyped roles)를 지지 않게 적절한 조처(appropriate measures)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이는 국가가 이슬람 여성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게 하는 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같은 협약 7조는 ‘국가가 여성의 정치적 공공 생활에서 여성이 차별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규정하며,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은 ‘교육은모두에게 주어져야 하고 다른 인종이나 종교적 집단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장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18조 3항은 ‘개인의 종교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은 공공 안전이나 질서, 건강, 도덕 등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조약을 인용하느냐,어떤 조항을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는 2009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 연설에서 “나는 여성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리는것이 불평등하다는 서양의 시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가 없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생각한다”고말한 데 이어, 최근 9·11 테러의 잔상이 남은 뉴욕 한복판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는 데 동의했다. 그 기저에는 이슬람을미국의 한 종교, 한 문화로 인정한다는 견해가 깔려 있다.
일부 여성인권 운동가들은 히잡 착용을 종교나 문화적 상징으로 여기지 않고, 단지 여성소외 혹은 여성 차별의 공공연한 증거로 여기기도 한다. 일견 맞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부 이슬람 여성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다소 성급한 결론처럼 들린다. 반면 여성이 직접 히잡 착용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점과, 대신 그 선택이 교육권과 같은 다른권리를 실행하는 데 어떤 영향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이 가장 논리적으로 들린다. 머리카락을 가리는 것은 자유지만(문화·종교적 자유), 그것을 거부했다고 해서 사회가 어떤 차별이나 위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여성의 인권·평등)오바마의 말은 여러 가치를 한데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이지 않은 문화를 포용할 준비는?
제네바 축제의 한복판. 검은 천을 두른 여성들이 같은 천이지만 다양한 장신구를 이용해 미세하게개성을 드러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들 나름대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히잡 착용은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결정될 문제지, 특정 국가나 사회가 강요할일은 아닌 것 같다. 대신 교육이나 평등의 문제처럼 그 전통에 내재한 문제점을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합리적인태도다. 글로벌 시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기로에 서 있는 한국도,프랑스와 퀘벡주의 사례를 교훈 삼아, ‘한국적’이지 않은 상대를 포용할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과연 불꽃놀이는 소문대로 대단했다. 가장 아름다울 때 바로 사라지는 예술적인 최고의 경지.그 순간만큼은 한자리에 모인 세계인 모두가 넋을 잃고 한곳을 응시했다.
<히잡 논란 뒤에 감춰진 진실>, 한겨레21 제826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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