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첫 인사(人事)를 보다 든 심미적(aesthetic) 감상
멕시코의 거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alez Inarritu) 감독은 우리 모두의 인생이 하나의 거대한 실처럼 얽혀 있다는 사실을 관조적인 시각으로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영화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 <바벨(Babel)>, <21그램(21 Grams)> 등은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개개인이 삶이 하나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작은 일 하나가, 향후 세계 어느 곳에 어떤 사건을 몰고 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감독의 결정론적 시각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관계의 중요성을 숙고하기에는 충분한 메시지를 던졌다.
영화 <21 그램>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수학교수 ‘폴’에게 심장을 준 사람은, 두 딸과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한 ‘마이클’이다. 그리고 마이클을 교통사고로 죽이고 뺑소니친 ‘잭’은 죄책감에 시달려 가출한다. 마이클의 심장을 이식받은 폴은 무엇엔가 이끌려 마이클의 미망인 ‘크리스티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심장의 원래 주인이 아내를 알아본 것이다. 동시에 크리스티나는 남편의 복수를 위해 잭을 찾아 죽이려 한다. 폴은 크리스티나를 도와주려 하지만, 결국 잭을 죽이지 않는다. 잭은 오히려 폴과 크리스티나가 묵는 모텔로 찾아와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고, 그 와중 혼란에 빠진 폴은 자신에게 총을 쏘게 되고 죽게 된다. 그 후 크리스티나는 폴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잘못을 뉘우치는 잭을 용서한다. 마이클은 죽었지만 폴의 생명을 연장시켰고, 폴은 죽었지만 새 아이의 생명과 죄인 잭의 새로운 생명을 가능하게 했다. 폴은 마지막 숨을 쉬며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얼마나 여러 번 죽어야 하나?”라고 독백한다. 영화가 극단적으로 상징하고자 했던 것은 관계다. 그물망처럼 연결된 사회, 나아가 인류(人類).
"친구 문재인을 두었기에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했던 노무현, 친구가 죽고 나서는 무엇이든 좋으니 "물과 물이 되어 바다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 했던 문재인. 폴의 독백을 생각하다 이들의 관계가 떠올랐다. 정치적 관계를 떠나, 누구나 부러워할 사나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이다. 그리고, 야수들의 정치를 거부했던 자유인이었던,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매력이 있었던 그가, 이제 그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2011년 경남 김해 재보선에 그를 거론하며 "인간적으로도 대단히 매력적인 분"이라며 "얼마나 완강한지 알지만 그분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다"라며 문재인의 정치 입문 필요성을 역설했던 이낙연 전남지사가, 거꾸로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지명자에 의하면 "자주 이야기하는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인격적으로 맺어진 관계기에 스토리는 더 좋다.
영화의 상징처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연결돼있다면, 한 사람을 대할 때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할까. 오늘 내가 던진 하나의 마음이, 무심한 행동이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우리의 말과 글, 행동의 품격은 어떠해야 할까. 그래서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했던 것 같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인사는 만사(萬事)"라는 말을 이제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는 엄중한 시기다. 새 정부의 '방문객'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어떠한 인과관계로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닿았든 간에, 이념이나 당파성, 과거의 시대정신에 천착한 사람들 보다는, 세계를 무대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고, 따뜻한 리더십으로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유능하고 인간적으로는 품격 있는 인사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그들이 꿈을 꾸던 시절의 시대정신이 민주화와 개혁이었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퇴행적 이념대결이 아니라, 우리의 젊음이 몸을 던져야 할 새로운 사회혁신과 융합, 글로벌 시대의 과제를 이해하고 견인해 줄 수 있는 분들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냥 문재인 대통령의 첫 인사(人事)를 보다, 논리적인 비평보다는 인간의 만남과 관계에 대한 감상이 들었다. 영화 <21그램>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