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단점을 보완하기보단 장점을 살려라
시처럼 일하는 것. 심장이 내키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생각조차 힘든 일이다. 결국, '자기관리'라는 흔하디 흔한, 그렇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이 꼬리를 무는 와중 서재에서 자고 있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발행한 <HBR's 10 Must Reads: On Managing Yourself>라는 빨간 책을 집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자기관리에 대한 탁월한 논문들을 통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필자의 그간의 직장 생활을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통찰을 얻었다.
특히, 경영학의 대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1999년에 발표한 논문인, 두 번째 챕터 <On Managing Oneself>를 읽다가, 며칠 전 읽었던 <한겨레 21> 안수찬 기자의 글에 대한 개인적 감상이 (내용 참조는 여기에서), 경영학의 언어로 구체화된 것 같다는 청량한 느낌을 받았다.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며, 불확실한 결정을 나의 인생으로 만들기 위한 동력은 '심장'에 있다는 데 누구보다 동의 하지만, 그 심장이 어떤 것인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숙고할 개인적 필요가 있었던 찰나에 소나기와 같은 글이었다.
피터 드러커는 명쾌한 논리로, 사회인으로서 조직 내에서 탁월성(excellence)을 기르기 위해 자기를 관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5가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내 강점은 무엇인가? (What are my strengths?)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가? (How do I work?)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What are my values?)
나는 어느 직업군/부류에 속하는 사람인가? (Where do I belong?)
나는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인가? (What can I contribute?)
어찌 보면 단순하고, 당연한 질문들이지만, 이 질문들을 상황에 맞게, 그리고 깊게 숙고한 채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커리어의 시작, 중간, 정점 그 어디에 인생이 위치하고 있든지 간에, 현실(status quo)을 직시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위에 질문들에 스스로 답변해 보는 것은 앞으로 여정에 좋은 나침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첫번째 질문이다. "내 강점은 무엇인가?(What are my strengths?)"
일터에서 나의 강점을 알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피터 드러커는 개인적으로 별로 잘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경쟁력을 애써 기르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오히려, 내 강점을 더 극대화시킬 수 있는 데 집중하라고 한다. 그러니까, 심장이 뛰는 일, 나와 자연스럽게 시(詩)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일은, 결국 내 강점과 연결된 일일 수밖에 없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도 이는 중요한 통찰임에 틀림없다. 매니저로서 팀원 저마다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은 리더로서의 역량이고, 그것은 결국 조직의 성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모든 기술과 능력을 습득할 수 없다.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하고 싶지는 않은 데 배워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지식 노동자로서의 개인이 조직과 사회에 기여하는 관점을 생각하면, 잘하는 것을 탁월하게 만드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 바탕 위에 '하고 싶은 것'은 취미로 할 수 있다. 물론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는 것이 가장 최적의 경우겠지만 말이다. ('하고 싶지는 않은 데 배워야만 하는 것'은 되도록 안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까라면 까라'는 식의 군대식 논리에 우리는 많이 굴복했었는 데, 이 내용은 추후에 다루기로 한다.)
유엔(United Nations)에 근무할 때 만났던 한 전문가의 퇴임 인사가 떠올랐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던 그는, 평생 영어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할 걸, 다른 언어도 여러 가지 배운다고 설치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며, 인생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조언을 남겼다.(당연히 그의 영어 구사 수준은 외교가에서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높았으나, 아무래도 스스로 정해 놓은 탁월성의 기준에 못 미친 듯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나 공평하게 유한할 뿐이다. 모든 언어를 다 잘할 수 없고, 파이낸스와 마케팅, 수학과 예술을 동시에 다 잘하기란 쉽지도 않고, 흔치도 않은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약한 부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나몰라라 하라는 뜻은 아니다. 피터 드러커는 일류 엔지니어들이 인간의 본질은 엔지니어링 관점에서는 너무 무질서하다고(disorderly) 볼멘소리를 하거나, 반대로 인사(HR) 전문가들이 그들의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정량적 분석 능력을 자랑하듯 말하고 다니는 것은, 그들의 커리어를 성장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즉, 장점을 극대화 시키되, 단점을 부각시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드러커의 글을 읽으며,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어떤 장점을 극대화시켜야 하는지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해 보았다 (아래 부록 참조). 그러나, 여전히 대답해야 할 질문들이 많이 남아 있다. 다음에 다룰 내용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가?", 즉 지식노동자로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교류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부록: 드러커의 질문을 고민하고 정리해 본 개인적인 이야기다. 국제기구/공공부문에서 개발도상국에 프로젝트를 기획/실행하며 실무자(practioner)로서 근무해 온 필자는, 10개국 이상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기후변화 이슈와 관련된 정부 관계자, 학자, 기업인, NGO 직원 등의 전문가들을 만나고 교류해 왔다. 현재까지 깨달은 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환경적 임팩트가 큰 프로젝트,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자금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미래지향적 투자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혹자들은 이를 '착한투자', '임팩트투자', '사회책임투자' 등으로 표현하는 데 각각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세계를 생각하는 지향점은 큰 틀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단 하나의 프로젝트라도 성사시키는 것이다. 공공/민간부문 자금의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미래지향적 투자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사회적) 기업가들의 목표를 지원할 수 있고, 스토리와 스토리가 연결되는 판이 벌어지면 그곳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큰 틀에서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공공 부문과 민간부문의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연결해주며 판을 벌이는 매개자 (mobilizer)의 역할을 수행하고, 때로는 다수 이해관계자들이 얽힌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성사시키는 코디네이터 (coordinator)의 역할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자기 분야에서 확고한 철학이 있는 분들을 만나 품격 있는 관계를 맺고,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자체도 물론 좋아하고 말이다.)
그런데 자금이 소위 지속 가능한 발전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흘러 들어가려면, 정치적인 의지(political will)를 제외하고, 가장 필요한 것은 파이낸스 전문가들의 혁신적 "프로젝트 구성(project structuring)" 능력이다. 투자라는 것은 결국 다양한 위험을 분산시키고, 매력적인 결과의 예측을 통해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에게 투자의 이유를 설득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와 관련해 커리어를 더 쌓기 위해, 파이낸스 관련 전문지식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필자가 파이낸스 자체에는 역시 재능이 없음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좋아하지만, 잘 하지는 못하는 일 정도로 정리가 됐다.
그러나, 정리된 근거(수치)를 가지고 사람을 설득하고, 글을 쓰고, 압축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 일을 성사시키거나 (어느 경우에는 좋은 관계로 후일을 도모하는) 마케팅/커뮤니케이션/대정부 및 클라이언트 관리 등의 영역에는 자신이 있다는 것도 돌아보게 되었다. 즉, 지속 가능한 발전/녹색성장 등의 이슈에 관련해 정부와 국제기구, 선진국과 개도국, 사회적 기업가와 투자자, 학자와 필드 전문가 등을 연결시키는 매개자,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지난 경험을 통해 즐겨왔던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생각의 간극(gap)은 서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클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자금을 집행하는 공공부문의 하향식 접근 (top-down) 태도나 관습이 때때로 큰 틀에서의 혁신, 그리고 성과를 오히려 저해하는 경우가 있거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가들이 공공기관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있을 때는, 매개자, 중재자,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
물론, 파이낸스 관련 콘텐츠를 틈틈이 어깨너머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전문가 수준의 수학적/미시경제학적 지식을 가지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딜(deal)이 형성되는 구조를 파악하고, 필드의 핵심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그들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