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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혹의 우뇌 Jan 05. 2017

산 카를로스(San Carlos)에 내린 비

코스타리카 열대 우림과의 4차원적 조우

1년 반 전의 이야기다. 산속에서 그렇게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 본 것은 현역 군 복무 시절, 유격훈련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물론 훈련이 아니라, 관광 목적으로 위해 건설된 다리였기에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운치 있는 다리이긴 했다. 흔들림이 문제였다. 동행한 국립 산림 기금 (National Forestry Financing Fund)의 랜달(Randall)씨는 이 다리가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그렇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안 무너진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게다가 우리 뒤로 족히 20명은 넘어 보이는 단체관광객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다리는 더 흔들리기 시작했고, 건너기 전 출입구에서 본 “최대 수용인원 15명”이라는 문구가 머리를 스쳤다.


걸음을 재촉하는데 다리는 계속 흔들렸다. 랜달은 내 긴장감을 눈치나 챈 듯이, 그렇게 빨리 걷지 말고 좌우를 좀 둘러보라고 했다. 다리의 높이는 족히 30m는 넘었고, 좌우로 펼쳐진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때까지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이색적인 기분이었다. 산림과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문헌 속의 텍스트들이 책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울창한 열대 우림은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aura)를 뽐냈고,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 답게 다양한 종이 만들어내는 울음소리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협연처럼 들렸다. 흔들리는 다리에 몸을 맡기고 서있자니,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아니 이미 연의 일부인 채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것을 그때, 하필이면 태평을 건너 중남미의 작은 나라에서 비로소 (그리고 몸으로!) 느꼈다고 하는 것이 가장 알맞은 표현인 것 같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울창한 열대 우림 한가운데, 공중 위에 떠 있는 다리 위에서 열대성 강우에 순식간에 온 몸이 젖었다. 프린스(Prince)의 ‘Purple Rain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멜로디가 뒤섞이며 감각기관을 몽환적으로 만들었다 (음악적으로는 말이 안 되기는 한다!). 몸속 깊게 내재되어 있는 스트레스의 큰 덩어리가 산속 어딘가로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일 때문에 들른 이 곳에서, 산림정책의 현장을 실사하는 것 치고는 받은 사치가 너무 많아 감사의 마음까지 들었다.


그건 몇 년 만에 처음 느껴본 기분이었다. 온몸이 흠뻑 젖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좋기만 했다. 흔들림 따위는 잊었다. 그렇게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랜달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코스타리카, 그리고 열대우림에 온 걸 환영해, 여기서는 그렇게 흠뻑 젖는 거야! (Welcome to Costa Rica and tropical forests, and just get wet!)"


그 농담이 그때는 그렇게 시(詩)적으로 들렸다.


코스타리카 열대우림의 명물인 산과 산 사이에 연결되어있는 다리를 영어로 'hanging bridge'라고 한다.


사실 코스타리카는 생태관광으로 정평이 나있는 중미에 위치한 국가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산카를로스 화산지역(Arenal)에서 한 번 온천(hot springs)을 체험해 본 사람들은 그 로맨틱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이러한 생태관광의 성공은, 당연히 지속 가능한 생태계 관리가 뒷받침이 되어있다. 군대를 해산해 국방비에 예산을 투입하는 대신에 열대 우림에 투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Payment for Ecosystem Services)’의 도입이다. 이 정책을 도입하면서, 1970년 코스타리카의 전체 국토 면적의 21%밖에 되지 않았었던 산림 면적 (forest cover)이, 2010년 기준으로 산림 면적이 54%까지 늘어난 것이다.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는 생태계 서비스를 유지할 목적으로 산림 등의 지역을 소유하고 있는 토지소유자들에게 국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그 지역을 다른 용도로 개간하지 않고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도구다.(나라마다 생태계 서비스를 지칭하는 분류가 다를 수 있는데, 코스타리카의 경우 산림 관련 법률에 따라, 이산화탄소 흡수(carbon sequestration), 생물다양성 (biodiversity) 보전, 유역(流域; watershed) 보호, 및 문화적 심미안 유지(cultural aspect) 등 4가지로 요약된다.) 이 정책의 성공 덕분에 코스타리카는 국제사회에서 일약 지속 가능한 산림관리의 선도국가로 떠올랐고, 지금도 많은 나라들이 코스타리카 사례를 통해 배우며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가 관심이 있다면, 필자가 일터에서 공저자들과 함께 집필한 참고문헌("Briding the Policy and Investment Gap for Payment for Ecosystem Services")을 참조해도 좋다.)


더 대단한 사실은 코스타리카에서 생산되는 99퍼센트 이상의 에너지원이 재생 가능한 (renewable)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 영상 1 Costa Rica's Last Gree Mile (코스타리카 환경부 장관 출연); 참고 영상 2, TED 강연)


Hot Springs. (사진출처: http://costaricaholidayadventure.com)


그런데 갑자기 랜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왜 당신 국가는 항상 행복지수 조사에서 상위권에 위치하냐고 말이다. 스위스에서 일할 때, 동료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스위스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매일 초콜릿을 먹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스위스와 코스리카를 비교하자니 공통분모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엄격한 생태계 관리를 통한 자연보전과 생태관광이라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논거가 있는 주장이라기보다는 필자의 가설에 불과다!) 생태계 관리가 국가정책의 주류이면, 국민들은 생태계를 찾는 것을 일상화할 수밖에 없고, 자연과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여유를 찾고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꽤 단순하고 빈약한 논리인 것 같지만, 비 오는 울창한 열대림 한가운데 덩그러니 걸려있는 다리에서 눈을 감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2014년 영국의 한 매체가 발표한 행복국가 순위다. 코스타리카는 1위를 차지했다. (사진출처: Mailonline)


조사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코스타리카와 스위스는 행복지수 평가의 상위에 랭크되는 단골 손님이다.



비 오는 원시림(primary forest) 지역을 빠져나온 후, 닌자거북이를 통해 열대우림을 알게 되었다는 조카 한(Hahn)이에게 엽서 한 장을 보냈다. 카카오톡으로 목재 사진을 보내줬더니 나무를 잘라서 "참 나쁘다 (really bad)"라고 말했다는 메시지를 보고, 충분히 자란 나무는 잘라서 목재로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다고 쓰려고 했는데, 호텔을 떠나는 길에 급하게 적어서 영어로 잘 썼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음에 만나면 더 이야기해봐야겠다. (어느 정도 자란 나무는 목재로 활용하고 어린 나무를 다시 심는 것이 이산화탄소 저장량을 더 늘릴 수 있는 친환경적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다.)


대자연에 속한 감사와 겸손의 마음으로, 그리고 언젠가 이 곳으로의 가족 여행을 꿈꾸며 발길을 옮겼다.


참조: 코스타리카에 대해 최근 국문으로 잘 정리된 기사를 발견했다. 반가운 분이 쓴 기사인데 (개인적으로는 모르지만), 코스타리카에서 뵈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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