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남편의 세탁 단상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유럽에 근무하던 신혼 시절, 몇 가지 가정사와 개인적인 문제로 귀국을 고민하고 있는 내게, 더 구체적으로는 일이 우선이란 생각으로 아내와 잠시 떨어지더라도 혼자라도 유럽에 남을 까 고민하던 찰나의 필자에게, 당시 상사는 이런 인생 조언을 남겼다.
"세상 살면서 다 때가 있어. 지금 자네 일 때문에 아내와 떨어져 지내면 후회한다. 빨래도 하고 그러면서 그냥 시간 좀 보내. 일할 기회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온다."
거참 빨래라니, 군대에서 칼 다림질하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이렇게 혼잣말을 했지만, 나는 그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빨래 말고 아내와 같이 지내는 것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귀국을 했다. 참고로 필자는 계약이 남아있었고, 이 분과는 아직도 친하게 지낸다.
그 이후 7년이 지난 지금, 그 빨래란 것을 정말로 제대로 하게 되었다. (그간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 아내의 순수 의지로, '빨래 시스템'을 필자가 접근을 못하는 영역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사실 출장을 많이 다니는 직업 탓에, 호텔서비스에 길들여진 필자는, 깔끔하게 정리된 보송보송한 빨래에 익숙해져 있음을 고백한다. 출근할 때마다 척. 척. 척. 준비돼있는 옷장을 생각했다. 결혼 후 현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빨래에는 특별히 추가 지출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아내는 세탁소에 와이셔츠를 맡기기를 거부했다. 절약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안다. 그런데, 다림질까지 해야 하니 시간이 걸렸다. 마찰이 생겼다. 대체 왜 제때 준비가 안 되는지, 볼멘소리를 뱉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짧은 육아 휴직 동안, 빨래를 직접 컨트롤하는 중책 (군복무시절과 혼자 살 때를 제외하면 경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좋은 인사가 아니다!)을 맡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4주 동안, 산모와 5살 아들, 신생아의 빨래까지 맡다보니, 옷을 갈아 입기 싫어졌다. (그래도 오해는 말자. 갈아 입었다.) 심지어 아래에 나온 이상한 물건을 구매한 아내에게, 참나 뭘 이런 것 까지 다 사고 그러냐라고 지나가는 소리를 했던 필자가, 이제는 그 물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5살 아들과 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기에 키가 알맞다.)
결혼 전, 아내의 고향에 처음 방문했을 때, 지금은 작고하신 아내의 외할아버님은, 남자가 무슨 집안 일을 하느냐는 멋진(?) 코멘트를 하시며 필자의 마음을 편히 해주셨지만, 남편이 일하지 않으면, 일하는 여성, 양성평등, 뭐 이런 거 다 공허한 메아리가 돼버리고 만다. 칼퇴근도 그래서 해야 된다. 하늘나라에 계신 친할머님도 그렇게 귀했던 손자가 빨래를 한다고 하면 못마땅하시겠지만, 시대는 그렇게 무심히도 변했다.
사실, 청량한 세제 냄새를 느끼며, 맑은 날 빨래가 바람과 부대끼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흐뭇해 질 수가 없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에는 창문을 열어놓지 못해 걱정부터 앞선다.
날이 참 좋았다. 빨래를 널어놓고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예전에 보았던 인도의 다큐멘터리가 생각나면서, 도비 가트 (Dhobi Ghat)라는 거대한 공공 세탁장에서 일과를 보내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빨래를 하는 사람들끼리의 세계적 연대의식(?)이랄까.
그러고보니 19대 대선 말미에 세탁기 논쟁이 잠시 벌어졌었다.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든지, 누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든지, 고장 난 세탁기에 들어갔다든지.
빨래가 잘 되려면, 날씨, 노동력, 시간 관리 3박자가 맞아야 한다. 어쨌든, 새 정부에서도 그 나름의 빨래를 한 번 해야 하는 데, 이 3박자가 잘 맞으려나 모르겠다. 여러 이슈가 많으니 시간 관리도 참 중요할 것 같고, 빨래할 사람들도 빨리 뽑아야 할 것 같다. 날씨는 결국 여론과 정쟁의 흐름일 터인데, 이건 그냥 흐르는 물처럼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빨래 이야기하다 너무 많이 왔다. 날씨가 좋은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너무 추워 빨래가 얼어버리는 날도 있다. 중요한 건 빨래는 결국 마른다는 것이다. 인생 모든 일이 어떻게든 되게 되어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복잡한 세상, 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세탁 단상이라고나 할까.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 서고 있는 겨울 빨래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희미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게
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
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
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
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
좋겠다고, 아니면 겨울 빨래에
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
그것이 마르는 날
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