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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혹의 우뇌 May 20. 2017

낭중지추

누가 우리를 선택할 것인가?

청와대 안살림을 도맡는 총무비서관에 7급 출신 기획재정부 관료인 이정도 비서관이 임명된 날, 어떻게 이런 분을 아셨냐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질문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짧은 대답. 


“원래 낭중지추 (囊中之錐)”.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으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저절로 드러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이정도 비서관 (출처: 국민일보)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 데, 메시지는 특별했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종국에는 누군가 알아줄 것이라는 이상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작은 걱정은 자칫 낭중지추라는 말이, 자기를 드러내는 수동적인 자세를 인정해주는 단어로 쓰일까 우려스럽다. 문화가 섞여 진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세계의 인재들과 계속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기구에 근무하다 가끔 한국인 선후배 혹은 동양사람이 조직을 떠나며, 한자성어를 남기곤 했었다. 물론 필자에게는 마음 깊이 와 닿는 내용이 많았지만, 도대체가 여백의 미(美)라는 것을 모르는 서양인들이 과연 이 말에 숨은 의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항상 들곤 했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직설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문화적 기준으로는 약간의 과도한 자기 어필이 필요하기도 하다. 서양인들의 공격적인 자기 홍보 때문에, 개인적으로 다양한 실패를 경험하고 내린 결론이다. (물론 지금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겸손과 겸양의 미덕"은 상황에 따라 발휘하는 개인적인 노선이 정해졌다.) 


이어령 선생님도 된장찌개를 떠 놓고 같이 나눠서 퍼먹는 사람들과, 고기를 자기 먹을 만큼만 칼로 잘라 포크로 집어 먹는 서양인의 뇌구조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사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꼭 서양의 문화만도 아닌지 모른다.


아래는 낭중지추에 관련된 사기(史記)의 평원군전(平原君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국(戰國) 시대(時代) 말엽, 진(秦) 나라의 공격(功擊)을 받은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宰相)인 평원군(平原君)을 초(楚) 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遂行員)이 필요(必要)한 평원군(平原君)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 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 못한 채 고심(苦心)했다. 이때에 모수(毛遂)라는 식객(食客)이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하고 나섰다. 평원군(平原君)은 어이없어하며 「그대는 내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하고 물었다. 그가 「이제 3년이 됩니다.」 하고 대답(對答)하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지 않소?」 하고 반문(反問)했다. 모수(毛遂)는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 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끝뿐이 아니라 자루(=炳)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하고 재치 있는 답변을 했다. 만족(滿足)한 평원군(平原君)은 모수(毛遂)를 수행원(遂行員)으로 뽑았고, 초(楚) 나라에 도착한 평원군(平原君)은 모수(毛遂)가 활약(活躍)한 덕분에 국빈(國賓)으로 환대받고, 구원군도 얻을 수 있었다고 함


- 출처: 네이버 사전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핵심은 모수라는 식객이 스스로 나섰다는 점이다. 3년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을 스스로 드러냈기 때문에 발탁될 수 있었다. 실력이 있다 한들,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알아주지 못할 확률이 높다. 기획재정부의 국장이라는 자리는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중책 자리다. (공무원 사회에서 기획재정부 국장의 위상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정도 비서관은 이미 검증된, 그리고 충분히 알려진 인재였던 것이다.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것은 성공의 기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력을 남에게 알맞은 때에 잘 알리는 것이다. 품격 있게 알리면 금상첨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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