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이 지난 기록
8년 전에 책을 하나 기획하고 집필한 적이 있다. 제네바-프랑스 국경을 매일 넘어서 출근하다, 불현듯 이 제목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이디어부터 기획서까지 채 하루가 소요되지 않았다. 연락을 받은 한국의 출판사 대표님은 단박에 의기투합해 나의 기획과 투자를 응원해주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별거 아니었다. 유럽에서 알게 된 7명의 젊음을 만나, 넥타이를 풀고, 높은 굽을 벗어던지고 이야기하려고 했다. 이국 땅에서의 인터뷰는 장소를 불문하고 운치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아름다운 스위스의 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며 순식간에 속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가까워졌고, 제네바의 1인용 고시원만 한 크기의 방에서 볶음밥을 해 먹으며 인생을 나눴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래를 상의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주인공들을 몇 번씩 만났다.
애초부터 성공담을 전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저마다의 고유한 삶, 바로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다. 글로 이루어진 그들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들을 돌아볼 때 나도 돌아볼 수 있도록 말이다.
출판사는 “1년간의 프로젝트,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라고 홍보 문구를 정해주고,“스펙 열풍, 자기계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사람을 ‘참 값’에 가깝게 바라보고 있는가”라고 과분한 질문도 곁들여 주었다. 죽마고우는 무료로 시간을 들여 책 커버를 디자인해 주었다. (지금도 이 색감과 디자인이 너무좋다)
개인적으로 투자까지 했던 책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몇몇 젊은이들의 진실에 가까운, 그래서 인터뷰어로서는 과분하고 감사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도하게 포장하지 않았으니, 재미는 없었던 거다.
그러나 무엇을 스스로의 힘으로 시작하여, 스스로 끝을 내기까지가 참 힘든 직장생활.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끝까지 완성한 작은 추억은, 지나가고 있는 젊음의 심장박동 소리를 희미하게나마 다시 듣게 해 준다.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열정, 그것을 조건 없이 지지해준 사람들. 지난 8년, 물리적인 국경, 마음의 국경을 무수히 넘었지만, 열정이라는 단어, 진심이라는 단어, 이런 것들은 언제나 변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그때 찍었던, 사진 같은 글은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함께 그렇게 책으로 남아있다. 내일은 그중 한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라, 새벽부터 홀로 기차를 탄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는 그때의 기억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