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전 콜롬비아에 대한 한국어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그렇게 수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 흥미로운 책을 하나 발견했다. 효형출판에서 출간한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이재선 지음>인데, 다소 가벼운 책의 제목에 비해, 연극배우 출신 저자가 전하는 그 내용은 진지하고 솔직했다.
가장으로서 무모하다 싶은 선택을 한 저자는, 보편적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콜롬비아 부에나비스타 커피마을에 가족과 함께 무작정 방문한다. 물론, 그가 가장으로서 감내해야 할 것들은 책에 언급된 것 이상이었겠지만, 그의 아이들이 아빠처럼 도전하고 부딪히며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참 인상적이었다.
사실상 콜롬비아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은 별로 없었지만, 이 책은 내게 미지의 세계를 접하는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했고,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에 관해 잠시나마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책 첫 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면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온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 때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오늘보다 내일이 더 아름답기를 꿈꾼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미술관에 들렀다. 이국적인 이 곳에서 혼자 살며 여러 생각들이 문득 나곤 한다.
살면서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때를 꼽으라면, 요즘에서야 의아하게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 5학년 때인가, 흥부와 놀부전을 각색해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어린이 감독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놀부의 아내가 밥주걱으로 흥부의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 안성탕면을 활용해 이마를 때리는 것으로 각색을 했고, 생라면을 먹는 게 유행이었던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스토리를 만들고, 각색하고, 편집하고,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 물론, 현재 국제기구에서의 업무를 통해서 개발도상국을 도우면서 자부심도 느끼고, '기획'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미명 하에 감각적인 시도를 가끔 해보고는 있지만, 영화와 연극, 드라마 PD 등 인간의 감성을 다루는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마음 한편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언젠가 회사 후배는 술자리에서 종국에는 자신과 같은 '종족(species)'과 어울리고 싶다는 인상적인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논리와 숫자를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가며, 가끔 나는 예술적 감각을 삶의 중심에 두는 일탈을 꿈꾼다.
영화와 연극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에서는 근본적인 궤를 같이 하지만, 영화와 비교하면 연극은 훨씬 즉흥적이다. 재즈도 기본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하지만, 클래식에 비해 즉흥적인 것처럼 말이다. 삶을 계획 없이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즉흥성을 배제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콜롬비아에서 살아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연극처럼, 재즈 음악을 연주하는 마음으로, 확실성보다는 불확실성과 즉흥성에 기반해 이곳에 왔다. 잘 살고 있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 위안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삶의 여정이 보다 다채로운 내일로 안내하리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